▣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시험까지 합격한 군인이 있었다. 학벌 좋은데다 머리까지 좋으니, 매우 잘나갔다. 군검찰과 군사법원을 오가며 요직을 거쳤고 2000년 45살 나이로 육군본부 법무감에 임명되면서 별을 달았다. 이어 2년 뒤엔 군 사법 분야 최고책임자인 국방부 법무관리관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발장이 접수됐지만 군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재심을 거쳐 기소가 됐고, 결국 보직 해임됐다. 재판 과정에서 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육군 법무감 시절 변호사들에게서 30만원, 50만원씩 용돈을 받아썼단다. 변호사 개업을 하던 전임자에게서도 100만원을 받아 챙겼단다. 국선변호인들의 도장과 통장을 맡아놓고 이들에게 송금된 국선변호비 1200여만원을 빼돌려 자기 계좌로 옮겨놓거나 엉뚱한 사람들과 골프를 치는 데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법원은 재작년 이런 혐의들을 인정하면서 그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청탁 해결을 위해 군판사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있었지만 법원은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코멘트를 달고 봐줬다. 다 지난 얘기 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느냐고 타박하지 말기 바란다. 과거 회귀 정권 아래서는 종종 과거가 현재의 미래가 되기도 한다. 최근 국방부 법무관리관 모집 공모에 바로 그가 응모했는데,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그를 1순위로 낙점한 것이다. 행정안전부에 통보하는 등의 세부 절차가 남았지만 국방부에서는 그의 금의환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란다. 이제 군사법원에서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할 변호사들은 도장과 통장을 준비하시라. 물론 수임료 받을 기대는 접어야 한다. 그 외에 군사법원 관련 사건을 다뤄야 하는 변호사들도 어서들 용돈 준비하셔야겠다. 기왕이면 빳빳한 새 돈이 좋겠다. 아참, 금의환향이 확실시된다는 그의 이름은 김창해이다.
감사원, 인권위까지 ‘코드감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코드 감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맹렬한 속도로 참여정부 흠집내기 감사에 나선 감사원 덕분이다. 그런 감사원이 이번엔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기획 감사에 나섰다. 감사원이 6월2일부터 열흘 동안 인권위의 인사, 조직, 예·결산 내용 등 전반적인 운영 실태를 살펴보겠다고 통보한 시점은 지난 5월29일. 통보를 받은 인권위는 내부 논의 끝에 “통상적인 수준의 감사는 받겠지만, 인권위 고유 활동에 대한 직무감사가 이뤄질 경우에는 실력행사에 나서자”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인권위가 2001년 설립된 이래 감사원으로부터 인사·조직 분야 감사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기업체로 생각하는 ‘CEO 대통령’에게 인권위의 각종 권고나 발표 등은 눈엣가시일 테니, 감사원의 행보가 이상한 것만도 아니다. 앞서도 감사원은 통일부가 남북협력기금을 과다 사용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혁신도시 성과가 부풀려졌다’는 감사원 보고서가 보수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정권과 불편한 관계인 한국방송에 대한 감사청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인권위에 대한 기획감사는 ‘코드 감사’의 결정판인 셈이다. 위기에 몰린 이명박 정권에 감사원은 검찰·경찰을 능가하는 ‘충견’인 것인가. 내가 대통령이라도, 너무 감사해할 것 같은 감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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