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우리 이제부터 사랑하게 해주세요, 네?”라는 메아리가 느닷없이 여의도에 울려퍼졌다. 지난 5월23일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마침내 공동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하면서다. 자유선진당의 18석과 창조한국당의 3석을 합하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명을 넘는다는 간단한 덧셈 원리가 작용했다. 원내 제3당으로서 쏠쏠한 대접과 함께 상임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하나 정도 노려볼 만하다는 등 두 당 안에서 군침은 이미 흐를 대로 흘러 넘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정통 보수’를 자처한 자유선진당과 ‘창조적 진보’를 내건 창조한국당의 동거는 일종의 불륜이다. 지난 대선 때 창조한국당이 이회창 대표를 “수구보수의 대명사”라고 불러댄 게 아직 귀에 생생하다. 5월23일 이 대표의 손을 맞잡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연고 중심, 기득권 중심의 성채를 풀고 국민을 향해 정책 중심으로 가는 게 미래지향적”이라고 했다. ‘미래지향적’이라는 단어는 주로 정치인들이 원칙 없는 변화를 강변할 때 애용한다. 지난번 일본에 간 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언급하며 꺼내들었다가 뒤에 뒤통수를 맞은 바 있다. 한 누리꾼은 문 대표를 향해 “이회창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좋더냐”고 비아냥댔다. 창조한국당의 자기 분열적 행동에 분노한 당원들도 탈당계를 쓰고 있다. 김건모와 빌 클린턴의 양해를 얻자면, 이는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관계’라고 해야 할까? 이번 교섭단체 구성은 호남 배제를 바탕으로 했던 1992년의 ‘3당 야합’에 이은 16년 만의 정치권 야합 사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우리 이제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라는 안도의 한숨은 같은 날 국방부에서 나왔다. 1년7개월 전 심신장애를 이유로 피우진 중령을 강제 퇴역시킨 국방부가 그를 복직시키기로 하면서다. 피 중령은 기쁨의 소감과 함께 “남들이 ‘군을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그렇게 싸우냐’고 많이 말했는데, 난 군을 사랑하기 때문에 싸웠던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가 피 중령의 짝사랑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이제 군과의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사랑은 사랑이고, 원칙은 원칙이다. 국방부는 원칙 없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지난해 8월 개정했으면서도 이 규칙을 근거로 퇴역시킨 피 중령을 복직시키라는 두 달 뒤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고는 5월6일 2심 재판부도 피 중령의 손을 들어주자 23일 항고를 포기함으로써 사법부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별 승소 가망성이 없어 보이자 마지못해 취한 조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가 이날 피 중령을 복직시키면서 “군 복무 중 발생한 심신장애 군인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장병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방부의 정책 기조를 구현하고…”라고 한 말은 그동안 그렇지 못했다는 걸 반성하는 ‘자술서’에 지나지 않는다. 피 중령은 군에 돌아가게 됐지만 내년 9월에는 군복을 벗어야 한다. 계급 정년에 걸리기 때문이다. 피 중령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시간을 잃어버렸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피 중령이여, 남은 열여섯 달은 군과 실컷 사랑하시라.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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