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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최홍기씨는 바지를 내리지 말라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의 본명은 최홍기였다. 우리 ‘앙 선생님’의 본명이 김봉남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나훈아 선생님’에게도 분명 본명이 있었다. 한 번도 ‘나훈아’가 본명일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의 실명을 접한 뒤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순 없었다. 그의 호적상 생년은 1951년이지만 실제 생년은 1947년이고, 따라서 지난해 환갑잔치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 홍, 기. 깊게 심호흡을 하며 그의 이름을 읽고 나니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최홍기씨는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에게 달라붙은 ‘괴소문’을 떼어내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실시간 연예정보를 생산해내는 인터넷 매체들이 보내온 사진 속에서 그의 표정은 뒤틀려 있었고 불편해 보였다. 최씨는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분노를 터뜨렸고, 결백을 밝히겠다며 단상에 올라 바지 지퍼를 내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물론 바지를 내리진 않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결국 그의 바지를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최홍기씨에게 ‘바지를 내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공권력을 가진 경찰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검찰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많은 경우 노무현도, 이명박도, 국세청 9급 공무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지를 내릴 수 없는 찌라시들은 최씨의 바지 속에 담겨 있을 ‘진실’를 파헤친다며 최씨와 ‘글래머 K’와 야쿠자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기사로 써 갈겼다. 결국 ‘글래머 K’의 주인공은 두 명으로 좁혀졌고, 그들의 소속사에서는 “절대 사실무근”이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자료를 뿌려야 했다.
분노한 최씨는 기자회견장에서 “남의 마누라를 탐했다면 (나는) 개새끼”라고 말했다. 2007년 1월25일 오전 11시41분 그 말을 받아, ‘나훈아, 남의 마누라를 탐했다면 개새끼’라는 기사를 올린 는 13분 뒤 ‘개새끼’를 ‘개××’로 정정한다는 고침 기사를 내보냈다. 이제 환갑이 지난 노인의 아랫도리 사정이 궁금해 킥킥댔던 사람들이 ‘개새끼’를 ‘개××’로 정정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당혹스런 일이다.

“누구나 더러운 빨랫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그동안 드라마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명언들 가운데 가장 으뜸되는 말을 꼽으라면 미국 드라마 의 첫 부분에 등장한 이 내레이션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술에 취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남의 아내를 탐내고, 남편을 탐낸다. 그런 사람이 오죽 많았으면 수천 년 전에 하나님이 돌판에 적어 보낸 십계명 가운데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구절이 포함돼 있겠는가. 최홍기씨는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삼류 소설이라고도 볼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고, 바지 지퍼를 부여잡고 “내가 5분 동안 직접 보여줘야겠느냐, 아니면 믿겠는가”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현장에 없었지만 웃겼을 것 같긴 하다). 우리는 그가 바지를 내리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언젠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개새끼’를 개새끼라 마음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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