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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잃어 버린 10년, 낭만에 대하여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원래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성공도 해본 놈이 또 하고 싶은 법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제는 성공해본 분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해도 지난 반세기 동안에 지구촌 전역의 3세계 민중들 중에 한국인만큼 물질적 성공을 거듭한 분들도 드뭅니다. 지구본을 몇 번씩 돌리면서 눈 씻고 찾아보십시오. 이처럼 힘차게 ‘일떠선’ 나라를 찾기가 힘듭니다. 동남아의 아핏차퐁도, 중동의 후세인도, 아프리카의 음보마도 한국의 김씨만큼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가족 단위에서도, 국가 차원에서도 성공은 그렇게 집안에, 담 너머에 있습니다. 서구도 행복의 나라는 아닙니다. 아름다운 서구에도 아름다운 계급 상승의 전통은 일찍이 사라졌다 합니다. 영국의 노동계급 빌리만 해도 중산층의 꿈 따위는 꾸지 않고 대를 이어 공장에서 일하는 팔자를 받아들인다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김씨, 이씨, 박씨들은 여전히 성공의 꿈을 놓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성공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너무나 가까운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도저를 탄 왕자님에 혹할 수밖에요. 그래도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해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체면이란 게 있었습니다. 그래도 체면 때문에 후보의 도덕성도 따지고 민주세력의 정당성도 인정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체면 따위 차릴 여유가 없습니다. 20 대 80 아니 10 대 90의 사회로 돌진하는 신자유주의 10년을 지나면서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지금 성공하지 않으면 영원히 광산의 빌리가 된다는 사실을. 그러니 마침내 체면 따위는 던져버리고 경제 만세를 외치는 커밍아웃이 한반도를 감싸고 돕니다. 한국에서 성공 신화는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는 나라’, 이렇게 비현실적인 광고가 오죽하면 대한민국 대표은행의 광고 슬로건으로 쓰이겠습니까. 이렇게 판타스틱한 구호가 설득력을 얻는 여기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여기에 화룡점정, 우리의 공범 의식이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한 푼도 벌지 않은 자, 그에게 돌을 던져라! 거리에서 짱돌을 던졌던 김형도 이제는 그에게 돌을 던질 처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국민성공 시대’ 이명박 후보의 구호는 무섭습니다. 당신의 못다 한 욕망과 나의 좌절한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를 뛰어넘는 진정한 블록버스터 공상과학(SF) 판타지입니다만 한국에서는 리얼리즘 구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잃어버린 10년, 맞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10년에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당신들이 잃어버린 정권이, 안보가, 권력이 아니라 낭만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강산이 변하니 인걸도 변하겠습니다만, 강산이 수십 번 바뀐 듯이 몰라보게 변신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날 방송의 중간광고 허용을 주도하는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이 어제의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 아니 공동대표라니, 성형 변신 프로그램 도 울고 갈 깜짝 변신 아닙니까. 한국에서는 가끔씩 하룻밤 사이에 10년이 지나가고 합니다. 변해버린 10년,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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