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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보수의 천년양국을 찬양하라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이것을 축구로 치자면, 대통령배 아니 박스컵 결승에서 화랑 A팀과 화랑 B팀이 맞붙는 꼴이다. 김 빠진 결승전이요, 맥 빠진 대회다. 한나라 A팀과 한나라 B팀이 맞붙는 결승이라니, 지루하지 아니한가. 하다못해 브라질 3부팀이라도 결승에 올라 한국 대표팀과 맞섰던 80년대 대통령배 축구대회가 그립다. 아니다. 이것은 80년대 대통령배라기보다는 70년대 박스컵이다. 이명박 선수도, 이회창 선수도 박정희 각하의 적자가 되지 못해, 그분 따님의 은총을 얻지 못해 안달이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2007년 12월 대통령배 대회는 그들만의 게임이요, 그분들의 사생결단이다. 이명박 선수가 최고로 뽑히나 이회창 선수가 재기에 성공하나 ‘도찐개찐’ 아니던가. 선발선수 낙마에 대비한 “스페어타이어”로도 불렸던 후보선수의 역전극이 그나마 눈길을 끄는 엔딩일 텐데, 유구한 비판적 지지의 역사로 2등을 1등으로 만들어온 분들께 협조를 구할 일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보수의 천년왕국을 넘어서 보수의 천년양국(兩國)이 도래했다. 양손 들어 찬양하라!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했다. 그들의 구호가 그들의 행태에 너무나 어울려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역시나 ‘미쿡’을 잘 아는 보수의 그들이 새삼 ‘갈켜’주었다. 그것은 사대주의라고. 정동영 후보의 구호 ‘가족행복’은 부시 가문의 슬로건 ‘Family Value’를 번역한 것이라고. 극보수 기독교 세력에게 ‘가장 나종 지니인 가치’이며 부시 부자가 행여나 훼손될까 애지중지하는 ‘가족의 가치’. 나머지 미국의 절반은 ‘패’자만 들어도 ‘오바이트’ 쏠린다는 ‘패밀리 밸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고, 오렌지가 태평양을 건너면 낑깡이 된다지만, 부시가 태평양을 건너면 정동영이 되는 해괴한 변신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혜택인가 부작용인가. 이렇게 오른쪽, 왼쪽 코스도 못 가리니 대통령배 마라톤 대회에서 3등으로 처져서 헤매는 것은 당연지사. 아무리 한-미 FTA가 좋아도 상표는 확인하고 수입하라. 철 지난 미국산 고물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일찍이 혼성모방의 정신으로 불가능한 조합을 실험한 ‘좌파 신자유주의’ 그분의 유산인고.

한자 한자 주홍글씨로 새겨진 가족의 가치 설교문은 다음과 같다. 신성한 남녀의 결합인 가정을 이루지 않는 자들은 무뢰한 자들이며, 한번 생긴 아이를 지우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며, 생긴 아이를 지워선 안 되지만 콘돔 같은 망측한 물건을 가까이 둬서는 곤란하고, 혼전에 순결을 잃은 그대 또한 죄인이며, 에이즈는 타락한 것들에게 내린 하늘의 심판이며,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자는 집안에 미리 준비해둔 총으로 응징해도 넉넉히 사함을 받는다. 이것이 ‘패밀리 밸류’ 원본이다. 이후로 너무나 시대에 맞지 않아 약간의 수정은 거쳤으나 기본이 영원하다. 정동영 후보는 구호를 ‘가족행복 시대’로 정했으니 노래는 으로 장단을 맞추라.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오직 집 내 집뿐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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