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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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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도서관의 탄생

등록 2007-09-07 00:00 수정 2020-05-03 04:25

▣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십수 년 전, 스스로도 이주노동자였던 한 친구는 자기 자취방에 도서관을 꾸몄다. 그 친구는 유난한 독서광이었는데, 어렵사리 모은 책을 혼자만 보기는 아까워 동료들과 나눠 보자고 자기 방을 개방한 것이었다. 그의 방에 들어서면 하얀 달력 종이로 덧옷을 입은 문고판 책 수백 권이 한쪽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책을 구할 때마다 상하지 않게 달력으로 싸고 겉장에 제목을 써넣었다. 정성스러운 노력이었다. 그때 그 친구와 했던 약속이 있다. 언젠가 힘이 되면 독립공간을 마련해서 친구들과 책을 나눌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보자고.

이주노동자가 책을 들기까지

‘꼬마도서관’은 그 약속이 씨앗이 되어 태어났다. 꼬마도서관을 만들기 전에도 사무실 한쪽에 상담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볼 수 있는 모국어 책을 구해 꽂아두었는데, 한두 권씩 없어지다 몇 달 뒤면 다 사라지곤 했다. 이 나라 책을 모았다 잃어버리고, 또 저 나라 책을 모았다 잃어버리고 하기를 여러 차례 했다. 책이 다 달아나면 한동안 서운하다가도 사회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프리유어북’ 캠페인을 떠올리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사라진 책들이 육중한 엉덩이 밑에 방석으로 깔리거나 라면냄비 받침으로만 쓰이지 말고, 누군가의 손에 소중히 들려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다 드디어, 자그만 공간을 마련하고 ‘이주민을 위한 꼬마도서관’을 열게 되었다.

어렵게 문을 연 ‘꼬마도서관’을 어떻게 사랑받는 도서관으로 키울 것인지 고민이 크다. 이주노동자가 손에 책을 들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한국인의 틀어진 의식이다. 뜻밖에 많은 한국인들에게 이주노동자를 지나치게 업신여기는 특성이 있다. 노동 문제를 통해서도 그런 특성을 보지만, 도서관 운동을 하면서도 뼈아프게 느끼는 일이다. ‘공장으로 찾아가는 도서관’ 일로 만나게 되는 한국인 관리자들 왈, “뭐? 외국애들이 무슨 책을 읽어? 우리 애들은 안 읽어.” 그 소리에 찔끔 놀라 넘겨다보면, 그 뒤에 서서 관리자 뒤꼭지를 바라보는 이주노동자의 불만스러운 눈과 마주치게 된다. 아마도 ‘이주노동자’도 책을 읽는 문화적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 밖에도 이주노동자와 책을 단절시키는 요인은 많다. 이주노동자 중에는 본국에서 지식인 반열에 있던 이들도 많은데, 이들은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노동에 절어 본래 가진 지식까지도 퇴화한다고 하소연한다.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하루 12시간을 넘기는 긴 노동시간, 보따리 하나 들고 일터를 옮겨다녀야 하는 부초 같은 삶은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책 한 권 손에 잡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꼬마도서관의 성패는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의식 변화,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혹시 해외여행 가세요?

여러 어려움에도 꼬마도서관이 사랑받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좋은 책을 많이 갖추는 것이리라. 좋은 책이 가득한 도서관이라면 아무리 외면하고 싶어도 비껴가지 못할 테니까. 그런 면에서 꼬마도서관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보유한 책이 13개 나라 6천여 권이나 되지만, 번번이 보고 싶은 책을 못 찾아 빈손으로 가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고 있는 형편이다. 원하는 책을 구입하자니 만만찮은 책값과 운송비가 우리를 기죽게 한다. 그렇다고 마냥 돈타령만 할 수는 없지. 하여 새로운 캠페인을 조용히 벌이고 있다.

“혹시 해외여행 가세요? 그럼 이주노동자들에게 책을 선물하시겠어요? 여행지에서 현지어 책을 한두 권 사다 꼬마도서관에 보내주시면 된답니다. 이주노동자 출신국인 아시아 나라면 가장 좋아요. 시, 소설, 잡지류가 최고 인기랍니다.”

어때요? 이 매력적인 책 후원 운동에 동참하시겠어요?(문의 전화번호 032-684-0244, 홈페이지 http://happylog.naver.com/asiansor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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