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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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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의 투쟁

등록 2007-06-29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시우. 올해 마흔 살인 그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찍은 사진으로 짐작건대 마음 따뜻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뢰에 기댄 채 피어난 흰 들꽃 한 송이, 지뢰를 밟은 뒤 그야말로 지뢰밭 같은 인생을 사는 피해자의 다리가 돼준 의족 하나, 90여 년 동안 철로를 부여안고 자신을 박아놓은 경원선 철원역의 철못, 녹슨 철마와 개똥풀….

그가 2003년 펴낸 의 사진들에는 가슴 밑바닥이 저려오는 아련함이 있습니다.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비무장지대 접경지대에서 목울대를 세우지 않고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로 조곤조곤 아픔을 말합니다. 50여 년이 흘러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정전(停戰) 상태’를 낮은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그런 그가, 지금 스스로 온몸을 갉아가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상대는 국가보안법.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된 뒤 구치소에서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6월22일 현재 64일째 단식 중입니다. 4월20일부터 6월6일까진 전혀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고, 그 뒤엔 하루에 쌀물 3잔과 된장국물 3잔을 먹는 준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부인 김은옥씨는 “65kg까지 나갔던 체중이 20kg가량 빠지고, 뼈에 얇게 살을 발라놓은 몰골이 되었다”고 모습을 전합니다.

공안당국은 유엔사령부, 대인지뢰, 주한미군 부대의 화학무기 보유 등 안보 문제와 관련된 그의 글과 사진이 보안법을 어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주제들은 우리 모두의 ‘운명’과 관련된 알 권리의 대상이고, 이에 대한 의견 표시는 언론과 창작의 자유에 해당합니다. 보안법을 두고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보안법은 유령처럼 우리의 일상을 배회하며 불쑥 칼날을 들이댑니다. 6월3일엔 경찰이 이적표현물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인터넷 헌책방 미르북을 압수수색했는데, 이적표현물 리스트에는 같은 책도 포함됐습니다. 대형서점에서 흔히 판매되는 책까지 문제 삼다니 명백한 군사정권 시절로의 퇴행입니다.

이시우는 에서 얘기합니다. “자유의 반대가 구속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반대는 관성이었다. 저항하고 꿈꿀 자유까지 막는 것은, 놀랍게도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이상 지속된 분단 의식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듯이, 보안법이라는 굴레를 불편해하지 않는 타성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를 옥죄는 가장 큰 장벽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온몸이 화살이 되어 어느샌가 보안법에 무신경해진 우리의 의식 한복판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6월항쟁 20돌의 열기와 대선가도의 검증 공방 속에서 우리가 이시우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첫 재판은 7월4일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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