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전화기를 들었을 때 그는 아마도 외로웠을 것이다. 올해 나이 51살. 전남 여수 사람이라고 했다. 술을 한 잔 마셨고,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 이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수화기를 들고 방송사에 전화를 했다. “의 구성이 에 견줘 떨어지잖아!” 그는 드라마 관계자를 연결해달라고 했지만, 방송사에서는 “밤이 늦었다”고 했다. “바꿔달란 말이야!” 그는 열여섯 차례에 걸쳐 줄기차게 전화를 걸었고(이는 열 다섯 차례 방송국이 줄기차게 전화를 끊었음을 뜻한다), 결국 세 차례에 걸쳐 “방송사를 폭파하겠다”고 소리쳤다. 일요일 밤 경찰 35명, 소방공무원 23명, 한국방송 방호직원 67명에, 국가정보원 직원 2명(얘네들은 여기 왜 낀 거야!)까지 낀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됐다. 폭탄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서울 남부지법의 판사님께서는 그에게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에서 내렸을 때, 그는 아마도 쪽팔렸을 것이다. 올해 나이 55살. 네이버 인물 검색란을 찾아보니 충남 천안 출생으로 나와 있다. ‘삐까번쩍’ 회장님 승용차가 아닌 털털대는 경찰 승합차 안에서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들이 맞았다는 얘길 들었고, 격분했고, 밑에 있는 ‘아그’들을 모았다. 경찰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도 어쩔 줄 몰라 헛발질을 거듭했고, 회사는 회장님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돌렸으며, 부하직원들은 마이클 조던만 빠졌다뿐이지 모든 게 갖춰진 최고 드림팀으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는 길에서 그는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이라고 입은 열었으나 기자들의 등쌀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구속됐지만(안되면, 오후에 고치겠음), 세상일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그에게 6개월 이상의 실형을 때릴 판사님은 있을까.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우기 힘든 화창한 금요일 오후.
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올해 나이는 아마도 37살. 고향은 묻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는 청계천8가 공구 노점상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심장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아들(지금쯤 열 살이 됐을 것 같다)의 수술비가 늘 걱정이었다. 지금은 우악스런 롯데캐슬 건물이 들어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동묘 앞 궁안마을에서 철거 투쟁 끝에 쫓겨났다. 2002년인가, 새 서울장이 들어섰고, 그는 청계천에서 쫓겨나 동대문 풍물시장으로 향했다. 풍물시장에서 맥주를 팔았는데, 장사가 안 돼 다시 청계천으로 나간다고 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2004년 5월쯤 일이다. 3년이 지났고, 이후 사연은 듣지 못했다. 서울시는 야구장을 없애고 풍물시장도 허물어 그 터에 패션타운과 공원을 만들 계획을 밝혔다. 그 시설을 설계한다는 외국 건축가들의 생경한 이름이 어지러웠다. 서울시는 공원 조성 예산으로 2275억원을 책정했다고 한다. 전임 시장의 그늘에 가린 새 시장의 노심초사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 그 남자는 어디에 있을까. 어딘가에서 외롭다고 느끼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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