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두 발의 총알.’
기억이 나실 겁니다. 지난 653호(4월3일치)의 표지 제목입니다. 은 범여권의 대선 진로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키 플레이어가 될 것으로 보고, 두 사람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으니, 적어도 한 발은 ‘오발탄’이나 ‘불발탄’이 된 셈입니다.
정 전 총장의 결정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해석과 전망이 쏟아졌지만, 무엇보다 ‘정치와 엘리트주의’라는 화두가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3월 말 정 전 총장이 자신의 교수 연구실에서 차를 나누며 “나는 엘리트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유난히 강조했던 게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정 전 총장과 ‘KS’(경기고-서울대) 학력이 같은 이회창, 고건, 김근태, 손학규 등 유력 정치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된 탓도 있을 겁니다.
누가 뭐래도 이른바 ‘KS’는 수십 년 동안 한국 엘리트의 대명사였습니다. 하지만 유독 정치에서만큼은 최정점의 자리에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정 전 총장의 선언 뒤 시민운동권의 한 유력 인사에게 ‘KS의 리더십은 뭐냐’고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답은 이렇습니다. “이지적이고, 분석적이고, 단계적이다.” 일종의 완벽추구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품입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이런 약점을 지닌 스타일로 해석될 소지도 있습니다. ‘좌고우면하고, 생각이 많고, 쉽게 버리지 못한다.’
시민운동권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정치는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위험), 하이 리턴(성취)’ 게임인데, KS는 하이 리턴만 하려고 한다. 왜? 버릴 게 많으니까. 역으로 가진 게 많으니까. 모든 것을 내던지지 못한다. 그게 경기고·서울대의 특성이다. 한국 정치가 원하는 리더십이 아니다. 물론 그런 정치구조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러고 보니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나 고건 전 총리, 정 전 총장 모두 닮은 대목이 많습니다. 사고방식이나 행동반경이 충분히 점쳐지는 것도 그렇고, 결단보다는 생각이 많은 대목도 그렇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맞서 단식투쟁이라는 결연한 대응 수단을 보여주긴 했으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역시 좌고우면하는 ‘햄릿형’에 가까워 보입니다. 반면에 이들의 반대편에서 ‘하이 리턴’을 이뤄낸 노무현이나 김대중 같은 이는 ‘꽃가마’를 타기보다는 거칠게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온 유형입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직접 글을 써 “주위를 기웃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투신해야 하며, 한 발만 슬쩍 걸쳐놓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될 성싶으면 나서고 아닐 성싶으면 발을 빼겠다는 자세로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훈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네 일상사를 정치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정치판 KS의 실패’가 보여주는 하나의 교훈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우리네 삶에서도 잡초 같은 질긴 생명력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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