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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노 싸나이’ 가슴에 경유 부었네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러니까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 치열했던 한 주다. 누구는 60년 전 기억을 되살리려 고군분투하고, 누구는 60일 전 기억도 되살리지 않으려 악전고투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40여 명의 인원으로 60여 년 전의 친일파 재산을 추적하는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했다. 친일파의 가계를 쫓기란 회장님의 행적을 쫓기만큼 어려웠다. 전쟁통에 토지대장은 타버렸고, 세월따라 재산의 형태도 바뀌었다. 그래도 위원회는 끈질기게 기록을 추적해 친일파와 후손의 땅 63억원어치를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렇게 역사가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면, 무죄는 기억하지 않는 자의 것인가.

이렇게 끈질기게 추적하는 자가 있다면, 저렇게 집요하게 부인하는 자도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둘째아들은 경찰 조사에서 심상치 않은 증세를 보였다. 사건 현장에 같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는 친구의 휴대전화 번호도 모른다고 하더니, 급기야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일관된 진술 태도를 보였다. 섬섬옥수 재벌가의 왕자님으로 곱게 자라나 전화를 받을 줄만 알았지 걸 줄은 미처 몰랐다는 사실을 에둘러 고백한 그의 진솔한 진술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버지도 조사에서 모르쇠로 일관했으니, 기억상실은 부전자전이라는 유전설을 강하게 주장한다. 한편에선 그가 다니는 예일대에서 지나치게 ‘클래식한’ 교육을 받은 결과, 휴대전화 같은 현대 문물을 멀리해 생긴 부작용이 아니냐는 억측도 나온다. 이렇게 가계도와 교육법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최근에 뉴욕대 연구진이 나쁜 기억만 지워주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혹시나 벌써 ‘조치’를 받으신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역시나 에너지 업계는 너무나 에너제틱해서 문제다. 한국화약을 전신으로 하는 한화그룹의 회장님께서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대한석유협회 회장님도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질렀다. 김생기 대한석유협회 회장이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른 것은 ‘경유’라고 밝혔다. 30년 정치판 생활의 내공으로 다져진 김 회장은 최근 “참여정부의 인기가 떨어진 것은 경유 가격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명쾌한 분석을 내놓았다. 서민 생활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경유 값을 올려서 성난 민심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라도 경유값을 내린다면 참여정부의 인기가 올라갈 것이라는 충고도 빼놓지 않아서, 안 그래도 울화통이 터지는 대통령 가슴에 불을 질렀다. 도대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리 미움을 받는단 말인가, 홧병이 났던 대통령은 뒤늦은 진단에 울화통이 도졌다. 그래서 홧김에 “정치 이대로 가선 안 됩니다”라고 절규하고 “열린우리당 사수하자!”고 선창하는 등 불 같은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대통령도 기억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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