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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스타] 아버지와 옥돔

등록 2007-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정국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jglee@hani.co.kr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산울림의 노래 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고등어’를 소재로 친근하게 풀어나간 인기곡이다. 노래가 나온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누리 세상에 ‘아버지와 옥돔’이란 사연이 소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노랫말처럼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사연은 아니다. 아버지가 어이없는 사기를 당한 것을 본 딸의 ‘안습’한 심정을 담은 하소연이다.

한 누리꾼이 토론 사이트인 ‘아고라’에 올린 사연이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어떤 행인에게 “유명 백화점에 납품하는 한 박스에 69만원 하는 옥돔인데, 한 박스 사면 5박스를 떨이로 주겠다”는 말에 속아 옥돔을 샀다. 집에 와서 박스를 뜯어보니 ‘짝퉁 옥돔’ 4마리만 들어 있고 전부 얼음이었다. 딸은 사기꾼 행상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버지에게 더 실망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순진하게 그런 사기를 당할 수 있느냐”는 게 딸이 진짜 화난 이유였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실망했다고 말한 딸의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며칠 뒤 ‘옥돔 사건 그 이후’란 글을 다시 올려,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각이 짧았다. 우리 가족 먹으라고 사셨을 텐데 실망했다는 말이나 하고 정말 죄송하다”며 “비싼 수업료 냈다고 치고 다음부턴 안 그러면 되죠. 사랑해요 아빠~”라며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또한 “평소 막걸리만 드시던 할아버지가 옥돔이 나오시면 밥을 한 그릇 다 비우셨다”며 “할아버지께 사다드리려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 덧붙였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월30일 현재 조회 수만 21만 회가 넘었다. 댓글도 300개가 넘게 달렸다. 대부분 “나도 당했다”는 내용이다. 장소도 전국적이다. 서울역·무역전시관·고속버스터미널 등 갖가지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다. 품목도 골프채·전복·조기 등 다양하다. 70~80년대에나 통했을 법한 사기에 걸려든 누리꾼들이 이렇게 많은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댓글을 종합해 ‘사기의 재구성’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많이 모인 백화점·할인마트 같은 곳 주변의 주차장이나 횡단보도에서 사람을 불러세운다. 아이스박스를 보여주며 “백화점에 납품하는 옥돔(혹은 조기)인데 납품하고 남았으니 가져가라. 떨이로 몇 박스 더 주겠다”고 한다. “박스 안에 연락처가 있으니 더 필요하면 주문하라”며 안심시킨다. 주변엔 그럴듯한 냉동차도 있고, 아이스박스에 번듯한 상표도 붙어 있다. 길 가다 이런 경우를 만나면? 속지 말고 신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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