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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믿지 말 걸, 참사 초기 왜 목소리 못 냈을까 죄책감 들었다”

부모 떠나보낸 고재승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사 인터뷰
등록 2026-01-29 20:43 수정 2026-02-05 19:50
고재승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사. 고재승 제공

고재승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사. 고재승 제공


“몰랐다.” “들은 바 없다.” “기억 안 난다.”

2024년 12월29일 179명이 사망한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이하 무안공항 참사)를 놓고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발언이 쏟아지자, 유가족들은 참담함과 분노에 고개를 떨궜다. “국가를 믿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텨온 1년의 세월은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진실을 규명해야 했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추가 확인하겠다”는 말로 회피했고, 경찰은 1년간 늑장 수사를 벌여 여야 의원의 질타를 샀다. 참사를 키운 콘크리트 둔덕(로컬라이저)을 놓고선 “한국공항공사가 재활용을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이 모든 것을 눈물을 훔치며 지켜봤던 유가족들 틈에 고재승 유가족협의회 이사도 있었다. 참사로 부모를 잃은 그를 전화로 만났다.

―국회 국조특위 청문회, 어떻게 봤나.

“유가족이 1년 넘게 겪어왔던 답답함을 국조특위 위원들도, 국민도 이제는 조금 느꼈으리라 본다. ‘이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 하며 서로 핑퐁 하는 모습과 경찰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문제, 그리고 사조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정조사로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책임자들이 청문회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나.

“국가가 참사의 진상규명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우는 유가족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왜 강력하게 여러 가지를 국가에 요구하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유가족들이 좀더 강하게 움직였다면 진상규명이 더 빨리 이뤄지지 않았을까. 죄책감이 살짝 들었다.”

―유가족들이 죄책감을 느꼈다는 게 더 참담하다.

“참사 초반에는 국가와 정부를 믿었다. (진상규명을) 잘해줄 것이라고 생각해 반년을 기다리다, 사조위의 엔진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청문회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보면, 많은 증거가 참사 초반에 있었고 유가족들이 놓친 부분이 많았다. 참사 초기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뭔가 명확한 자료가 더 빨리 나왔을 텐데 그때 왜 (내가)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문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참사 초기 유가족은 한국공항공사 쪽과 만났다. 정확히는 2025년 7월 엔진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때 공항공사 대행은 ‘콘크리트 둔덕 보강 공사는 설계 업체에서 제안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말을 믿었는데, 설계 업체가 청문회에 나와 ‘그런 적 없다’고 했을 때 충격받았다. 그간 정부를 믿어왔다. 그런데 이 신뢰가 청문회를 통해 깨졌다.”

―사조위는 곧 새로 구성된다. 경찰청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라는 의견도 나왔다.

“특수본에서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지금껏 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는지를 놓고 책임을 묻는 과정도 병행돼야 한다. 또 사조위는 참사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조류·관제·둔덕 등을 놓고 복합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참사 발생 뒤 대책도 정확하게 조사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청문회에 무안군, 전라남도청 관계자들이 나오지 않았다. 향후 조사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조사가 시작된다. 한겨레21을 포함해 언론에 하고 싶은 말은.

“참사와 관련한 주요 자료가 유가족들보다 언론에 의해 먼저 노출, 유출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언론이 이렇게나마 이야기해줘서 우리가 다시 한번 주목받을 수 있었다. 사고 조사가 앞으로 6개월 이상 더 길어질 텐데 이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봐주면 좋겠다. 요즘 언론이 받아적기에 급급하다. 그래도 한겨레21에서는 심층보도가 됐다. 좀더 부탁드리고 싶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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