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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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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박찬종, 그 회춘의 용트림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언제쯤이었던가. 백화점에서 할부로 샀다는 누런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양김씨를 향해 사자후를 토하던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무균질 인간’임을 내세워 우유 CF까지 따내며 기염을 토하던 그때 그 남자, 박찬종 전 의원께서 보여주시는 회춘의 용트림에 한나라당 빅3도 움찔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는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말했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헌 발의를 포기하라고 충언했으며, DJ에게는 공개 편지를 띄워 둘째 홍업씨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이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주의 타파일 것이고, 정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를 극복할 기개와 용단을 보여줘야 할 터이다.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마음 한쪽에서 스멀스멀 느껴지는 이 ‘허경영’(잘 모르시는 분은 네이버에 물어보시라)스런 느낌은 무엇이란 말이냐!

정말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시절 장난 전화는 학교에서 돌아와 텔레비전 만화가 시작되기까지 긴 시간을 때워주는 80년대 초딩들의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수법은 대략 이와 같았다. 띠리리리~링! 찰칵!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누구시죠?” “아줌마, 나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줌마 나라니까.” “그러니까 누구냐고요.” 잠시 동안 말도 안 되는 실랑이를 벌이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아줌마, (당연히) 흥분한다. 다시 전화를 건다. “아줌마 나야!”를 10번만 되풀이하면 흥분한 사람이 내지르는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욕설을 접할 수 있었다. 세월의 변화 때문일까. 요즘 장난 전화 세태는 사뭇 크게 달라졌다. 주로 폭탄이 등장하고 63빌딩, 타워팰리스, 인천공항, 한남대교 등 스케일도 장난이 아니다. 인생은 살기가 어렵다는데, 애먼 전화 한 통에 여차하면 구치소에서 콩밥 드실 수 있다.

그들은 정말로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것일까. 연초부터 아베라 불리는 그 나라 총리가 슬금슬금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을 지껄여대더니 결국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일본 정부가 종군 위안부의 강제성 여부를 묻는 일본 사민당 의원의 질문에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서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이 직접 나타난 듯한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채택하고 만 것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 일본 관헌의 직접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말하면서도 “직접 개입은 없었다”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하다. 꽃 같은 젊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광의의 강제는 인정하면서도 직접 등을 떠민 협의의 강제를 부정하면 아베와 그 친구들은 행복해질까? 1억2천만의 인구를 가진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이끌고 있는 그들의 정체는 뭐란 말이냐? 바보냐, 변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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