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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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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7일

등록 2007-03-08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3월17일. 워낙 이러저런 기념일이 많은 터라, ‘3·17’에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실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거나, 가슴 설레고 기다려지는 날은 아닙니다. 되레 적잖이 고통스럽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입니다.
이날부터 20일까지 전세계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점령을 반대하는 국제시위가 벌어집니다. 지난 2003년 3월20일,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 아래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네 번째로 열리는 국제적 연대의 반전운동입니다. 지난해 이 무렵에도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터키 이스탄불,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브라질 상파울루, 일본 도쿄 그리고 서울 등에서 반전시위가 전개됐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반전의 거대한 물결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지난 1월14일 아프리카의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 반전총회는 올해 국제시위의 호소문을 채택하면서 ‘전쟁을 중단하고 모든 군대를 철수시키라’는 요구를 머리로 내세웠습니다. 서울에선 3월17일 오후 3시 서울역 광장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 주최로 집회가 열립니다.

이라크 전쟁의 성격은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미국이 침공의 이유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 폐기나 이라크 민주화는 허울뿐이었다는 게 입증됐습니다. 대신 이라크와 주변 지역의 패권 확보, 석유자원 장악 등이 미국의 속셈이었음은 한층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실’을 확인하는 데 치른 대가는 너무 크고 가혹합니다. 이라크전 개전 이래 60만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전쟁과 관련된 폭력으로 숨졌고, 해외로 떠난 난민만 1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미국 존스홉킨스 불룸버그 공중보건대 조사팀 조사,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자료). 지난 2월8일 현재 미군 사망자 3111명을 포함해 연합군 사망자 수도 3336명이나 됩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도 사정이 비슷해 아프간인 1만여 명이 죽었고 650만 명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국 젊은이 윤장호씨의 희생이 더해졌습니다.

정의롭지 않은 침략 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합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이유로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부대를 유지하고, 파병지를 레바논으로 넓히려는 우리 정부의 방침도 달라져야 합니다.

“나는 2007년 3월17일 펜타곤(미 국방부)에서 지금까지 이 전쟁에서 죽어간 모든 죄 없는 희생자들을 위해 행진할 것이다. 나는 또한 그 희생자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이 잃어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반전시위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이 인종차별적이고 계급차별적인 전쟁이 또다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기 전에 이것을 끝내기 위해 행진할 것이다.”

2004년 이라크 무장세력에게 붙잡혀 참수당한 미국인 닉 버그의 아버지 마이클 버그의 말입니다. 3월17일, 어느 자리에 있건 전쟁의 광기와 평화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됐으면 합니다. 2008년 3월에는 ‘3·17’과 같은 날이 없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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