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잠수함의 토끼’라는 말을 아실 겁니다. 지금보다 과학기술이 뒤졌던 시절, 잠수함 내부의 산소 밀도를 체크하기 위해 잠수함 밑바닥에 토끼를 놓아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사람보다 훨씬 산소에 민감한 토끼는 잠수함의 산소가 부족해지면 고통스러워합니다. 일종의 경고음을 내는 것이지요.
로 유명한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는 2차 대전 때 해군 잠수함에서 토끼의 ‘대용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토끼가 없어 그가 대신 공기의 부족 여부를 체크하는 실험 대상이 됐다는 겁니다.
이런 경험 탓인지 게오르규는 작가의 존재 의미를 잠수함의 토끼로 봤습니다.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위기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그 위험을 앞질러 경고하는 일을 하는 존재 말입니다. 지식인이나 언론 역시 잠수함의 토끼 역할이 존재적 숙명일 겁니다.

지난해 2월 개시가 선언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6차 협상을 거쳐 이제 막바지 지점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7차 협상과 이른바 고위급 ‘빅딜’만이 눈앞에 남아 있습니다. 바야흐로 ‘운명의 2월’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은 꾸준히 경고음을 내왔습니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처럼 선진국으로 가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 양극화 심화와 공동체 붕괴로 가는 위험의 길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방은 대세이며, 역사의 대세를 수용해야 하고, 그래야 역사의 주류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1월23일, 신년연설). 그러곤 “초기에 FTA와 관련해 여러 비판론이 무성했지만 결국 지금은 아무 근거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합니다.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그럼에도 은 운명의 2월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경고음을 다시 내려고 합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지적처럼 “한-미 FTA는 철저하게 미국과 한국의 대기업, 그리고 고급 경제통상 관료의 이익 및 신념에 복무하며, 그 희생자는 농민, 노동자 등 근로서민 계층”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입니다(이번호 38쪽). 그리고 노 대통령의 자신감을 비판하며, 6차까지의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거짓말’도 하나하나 따져봅니다.
경고란 위험을 사전에 막자는 데 뜻이 있습니다. 문제는 경고가 수용되지 않을 때, 그 경고가 올발랐음을 인정받는 길은 위험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위험 예방을 위해 경고를 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지독한 역설이자 모순입니다. 브레이크 없이 막판으로 치닫는 한-미 협상을 ‘당신들의 FTA’라고 비판하면서도, 차라리 ‘우리 모두의 FTA’로 결론났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한쪽에서 생기는 것도 이 지독한 역설의 고통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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