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김현영 동덕여대 강사
서민 단국대 교수가 최근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글을 썼다기에 찾아보았다. 그는 박근혜씨가 무슨 정치적 입장을 가졌는지는 관심 없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지지한다고 한다. 어차피 보수세력이 다음에 집권할 바에야,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대의라도 실현시키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꽤 진지한 농담이다. 아마도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얘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독일 보수파의 내공에 감탄했다?
그런데 이 농담, ‘유치’하고 위험하다. 농담은 고난도로 양식화된 의사소통 방식이다. 농담을 시도하는 쪽에서도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농담을 듣는 사람이라고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조건 안 웃었다간 농담이 통하지 않는 꽉 막힌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게 되고, 덮어놓고 웃다가는 실없는 사람이 돼버리니까 말이다. 고민스러웠다. 이 농담은 위험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이 떠들어대는 말 하나도 귀담아들을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역설에서는 웃겼지만, 그래서 결론이 박근혜씨라는 부분은 위험했다.
왜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게 위험하냐면, 그녀가 ‘지나치게’ 애국애족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율과 경쟁에 의거한 시장경제 성장, 튼튼한 안보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질서 수호를 통해 애국과 애족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모델을 마련한 박정희식 개발독재와는 내용상 달라졌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최종 목표를 애국애족으로 둔다는 점만은 변화가 없다.
박근혜씨는 올 초 독일을 방문해서 독일 보수파들의 뿌리 깊은 내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독일 보수파의 특징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욕망으로 나타난다. 독일 근대화 이후 보수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반자본주의 정서로 표출된 반유대주의를 철저하게 활용했던 것이 히틀러였고, 결국 독일의 보수파들은 1,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 최근 독일 보수파들은 통일 이후 동독인들에 대한 지원 제한부터 보수적인 이민정책까지 또다시 독일인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대중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독일 보수파를 배우겠다니? 무엇을 배우겠다는 것인가? 그들의 배타적인 민족주의? 혹은 제국주의적 욕망? 국민의 서열화?
애국과 애족을 강조하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박근혜씨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아무리 “우리는 하나”라고 해봤자, 2006년 현재 한국에서 혼인 신고한 부부의 13%가 국제결혼이며, 이주노동자는 불법 체류자를 포함해 6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애국애족은 이제 모든 국민에게 당연한 명제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범주에 포함/배제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할 문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박근혜씨는 거기에 대한 의문을 추호도 품고 있지 않다. 이러한 맹목성이 그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여성이라 안 된다’와 똑같은 얘기
서민 교수의 주장이 ‘유치’한 또 다른 이유는 박근혜씨에 대한 지지 근거를 ‘생물학적 여성’에 두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박근혜’는 어려운 이름이다. 여성주의 진영에서 박근혜를 지지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격화된 적도 있었고, 그가 성희롱을 당하거나 얼굴 테러를 당해도 여성 문제가 아니라며 팔짱을 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직접 만나는 일을 하는 여성 정치인들 모두의 문제라며 팔을 걷어붙이는 이도 있다. 박근혜씨에 대한 남성들 사이의 정치적 입장이 다른 것처럼 여성들 사이에서도 입장들이 많이 다르다. 그런데 박근혜씨에 대한 지지를 ‘생물학적 성별’에 둘 때, 여성들은 여성들 간의 차이에 대해 말하기가 곤란해질 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딸이자 한나라당의 대표로 전문 정치인의 길을 걸어온 박근혜의 노력은 단지 생물학적 운명으로 귀결될 뿐이다. 박근혜씨를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해야 한다는 건, 박근혜씨가 여성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얘기와 동일한 인식론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이 내가 박근혜씨를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한다고 말하는 서민씨에게 반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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