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초딩들에게 혼났습니다.
한 달여 전의 일입니다. 6주 전 이 칼럼(622호)에 ‘괴물게임’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9살, 6살배기 꼬마들과 함께 영화 을 본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칼럼 초반부의 내용은 대충 이랬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들이 무서움에 떨거나 칭얼거리더라. 12살 관람가 영화를 ‘불법적’으로 보여준 내가 못할 짓을 한 거 같다. 영화를 다 본 뒤엔 ‘미군 아저씨들 때문에 괴물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이건 반미 사상에 물들 징후다. 영화를 그런 식으로 만들다니, 봉준호 감독은 나보다 더 나쁜 짓을 한 게 틀림없다.” 일종의 반어적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에서 뜻밖의 반응을 접했습니다. 순전히 게임 콘텐츠 덕에 ‘괴물게임’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순위 1위에 랭크되면서 생긴 일입니다. 어느 블로그 사이트에 같은 제목의 제 칼럼이 퍼날라졌고 삽시간에 600여 개의 댓글이 붙었습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은 “불법으로 애들 데려가 영화 봐놓고 왜 죄없는 봉준호 감독을 욕하냐”는 거였습니다. 모두들 농담이 아니라 정색을 한 진담이었습니다. 대다수가 초딩이나 중딩들의 글로 짐작됐습니다. 개중에는 “초딩들 극장 오는 거 짜증난다”도 있었고, “니네들은 초딩인 적 없었냐”는 반격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지 주제도 모르고 봉 감독을 욕한 나쁜 놈”으로 찍혀버렸습니다. 초딩과 중딩들의 힘, 정말 ‘황당무쌍’했습니다.
초딩들에게 국어공부 더 하고 오라면, 다시 돌을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에 착오가 생긴 건 확실합니다. “아”라고 했는데 “어”라고 알아듣는 겁니다. 이렇게 답답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냅둬야’ 합니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려다가 더 큰 욕만 먹을 뿐입니다. 크면 알게 될 겁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도 답답할 것 같습니다. 그는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이 한국에 환수돼도 한-미 동맹에 문제 없을 것”이란 말을 한 차례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구국기도회를 연다, 시국선언을 한다 난리를 쳤습니다. 부시는 9월14일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자리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주었습니다. 소용 없습니다. 보수신문은 노무현 정권을 두들겨패며 작통권이 미국에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합니다. 같은 편끼리 이렇게 알아듣지 못해도 되는 겁니까?
얼마 전 접한 에피소드입니다. 지난 9월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작통권 단독행사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이들이 모였습니다. 행사 이름은 ‘대한민국을 위한 비상 구국기도회 및 국민대회’. 집회가 시작될 즈음 2호선 시청역 안에서 50대 아주머니가 누군가를 잡고 행사장으로 가는 출구를 물었다고 합니다. 길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던 그 누군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이더랍니다. “은혜 많이 받으세요.” 대답은 더 걸작입니다. “은혜는요. 민족의 앞날이 더 걱정이죠.” 전시 작통권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문제라고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혹시 ‘신앙의 문제’는 아닐까요. 신앙은 논리가 아닌 믿음의 영역입니다. 결국 그들을 말리는 건 ‘종교 탄압’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광적인 미국사랑, 그냥 냅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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