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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스타] ‘OTL맨’의 정체

등록 2006-08-18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종찬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pjc@hani.co.kr

‘OTL’은 인터넷에서 ‘좌절’을 뜻하는 이모티콘이다. 이 세 알파벳은 사람이 크게 좌절해 엎어진 모양새다. 누리꾼들은 이모티콘이던 ‘OTL’을 문자에서 ‘사람’으로 진화시켰다. 영국 축구선수 웨인 루니처럼 실제로 ‘OTL’ 하는 모습을 연출한 사진은 대번 화제가 되었고, 댓글의 말끝에 붙는 ‘OTL’은 말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말해주는 하나의 표지가 되었다.

우리나라 도심 한복판에도 ‘OTL맨’이 나타났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흰색 스타킹에 흰 가면을 쓴 남자가 종로, 남대문, 시청 등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OTL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이 ‘OTL맨’은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서울시청을 배경으로 OTL 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명동 한복판에서, 또 공중전화 박스 위에서도 엎어져 좌절한다. 이 남자는 다음에 블로그(blog.daum.net/otlman)까지 차려놓고 “8월10일 오후 2시, 종로 보신각 앞에서 만나자”며 ‘OTL 퍼포먼스’ 일정을 공지한 뒤 다음날 어김없이 후기 사진을 올린다. 그의 OTL 사진은 포털 사이트에서 화제로 다뤄지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날마다 좌절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OTL 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뭐하는 거죠? 날도 더운데….”(完蕩) “스펀지냐; 스펀지 실험 나온 거야?”(암내의일기) “등에 앉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밟고 넘어가고 싶다. 누군가 똥침을 놓아주기를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각고.”(나우시카 등) “팬티 비친다. 그래도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은데, 무조건 미친 짓이라고 하기엔 조금 그러네요.”(sksksk) “우리나라 청년실업 정말 문제다.”(나를믿으라)

누리꾼들은 이 의도적인 퍼포먼스에서 상업주의의 냄새를 맡았다. 생뚱맞고 엽기적인 퍼포먼스 → ‘도대체 뭐야’ 하는 누리꾼과 언론의 궁금증 자극 → ‘사실 난 이런 사람’이라는 속죄성 커밍아웃으로 이어지는 인터넷 ‘티저광고’의 예정된 시간표를 쏙 닮았다는 것이다.

미디어다음 관리자인 정영숙씨는 “누리꾼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반응이 좋아 ‘KIN보드’ 메인에 올렸다“며 “도대체 왜 저런 퍼포먼스를 하는지 우리도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OTL맨은 어려운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 블로그까지 개설해 누리꾼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마당에,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는 것은 귀여운 팬서비스 정도로 봐줄 만하다. 그리고 동시에 커밍아웃이 임박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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