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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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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짓, 안하면 안될까요?

등록 2006-07-20 00:00 수정 2020-05-02 04:24

▣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맞으면 정신을 차릴지도 모릅니다.
일에 집중이 안 되고 자꾸 딴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삶의 의욕이 저하되고 만사가 귀찮기도 합니다. 각성과 자극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사랑의 매’를 갈구한다면 마조히스트일까요?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어떤 신적인 존재가 멱살을 잡고 ‘귀싸대기’라도 후려준다면 말입니다. 오직 ‘당신 잘되길 바라는 선의’ 하나로…. 툭하면 마감시간을 어기는 이들, 재미없게 기사를 쓰는 이들, 명예훼손 송사를 일으키는 이들, 그런 기자들이 군기가 꽉 잡혀 일하게 될까요. 그럼 도 더 좋아질까요?
저에겐 ‘일곱 살의 트라우마’가 없습니다. 시골 농촌의 작은 ‘국민학교’에서 20대 초반의 여선생님은 따뜻하고 합리적이었습니다. 손바닥도 맞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게 3년 넘게 행복했습니다.

그러다 먼 중소 도시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악몽은 시작됐습니다. 30대의 남자 담임선생님과 만나면서 학창시절은 꼬였습니다. 2~3일에 한 번씩은 교실에서 선생님의 이런 고함이 터졌습니다. “전부 실내화 벗고 밖으로 나가!” 엎드려뻗쳐와 매타작, 그리고 이어지는 오리걸음. 어린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극한 지점을 한참 오르락내리락하고 나면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잘들 할 거지?”

머리를 박박 깎고 중학교로 진학한 뒤의 풍경은 영화 입니다. 나름대로 원없이, 각종 체위로 맞아보았습니다. 그랬기에 영화 속 권상우의 외마디 포효에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라는 그 외침은 아무리 생각해도 최고의 명대사입니다. 그 뒤 체벌의 합법적인 울타리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만 24살이 되어서입니다. 국방의 의무까지 완전히 마치자 더 이상 때려주는 사람이 없더군요.

지난해 어느 공고생들과 2~3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기 전공이라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도 체벌이 없지 않지만, 실습 때는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몽둥이찜질이 상상을 초월한다는데, 정작 놀라운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 학생은 선생님에게 이를 갈면서도 너그럽게 이해해주더군요. “우리가 맞을 짓을 했지 뭐~.”

종종 길에서 사람들이 다투다 폭언하는 걸 지켜볼 때가 있습니다.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설은 오히려 점잖고 평화적입니다. 정작 살벌한 언어들은 이런 종류입니다. “귓방망이를 그냥 갈겨버릴까 보다.” “패대기를 쳐버릴 놈….” “모가지를 비틀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 이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옛 추억을 떠올립니다. 아아,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선생님에게 짓밟히던 체벌의 추억!

2006년 대한민국에서 일곱 살 꼬마들까지 벌써 ‘그 짓’을 당한다는 건 너무 슬픕니다. 갖가지 대책이 있으므로 희망을 가져야겠지만, 또 사람들은 냉소를 퍼뜨릴 겁니다. “쯧쯧, 때리지 않으면 애들은 말을 안 듣는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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