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뻥

등록 2006-05-31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뻥치지 마!”
초등학교 시절 간혹 그런 일로 옥신각신했습니다. 허풍을 심하게 떠는 친구들 때문입니다. 자기 집에 있는 장난감에 관해 절묘한 표현력으로 떠벌립니다. “와, 그거 정말이니?” 다른 아이들은 입을 쩍 벌리고 부러워합니다. 근데 실제로 그 친구 집에 가보면 이런 말만 흘러나오는 겁니다. “애걔….” 덕분에 어릴 적부터 “인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신조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습니다.
세살 뻥 여든까지 갈까요? 제 경험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때 뻥치던 친구들, 사회 나와서 그 버릇 고치기 어렵습니다. 갈수록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혼자서만 뻥치지 않고 담백하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생존을 위한 허풍, 빵을 위한 뻥입니다.

지난주 목요일 저녁,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 가지 확인을 하고 싶다며 난데없이 물었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황라열씨가 에 근무한 적이 있나요?” “네?” “2001년에 수습기자로 근무했다는데요?” “그런 적 없습니다.” “출마자 프로필에 그렇게 써 있어서요.” 1시간 뒤 한 번 더 전화가 왔습니다. “황라열씨랑 다시 통화했더니, 수습기자는 아니고 수습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는데요?” “네?” “에 기고를 하고 취재비도 지원받았답니다.” “그런 일이 없을 텐데…. 원고가 실렸답니까?” “실리지는 않았답니다.” 이튿날엔 SBS 기자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 역시 기자와 같은 질문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알다시피, 지난 4월12일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황라열씨는 ‘유명 인사’입니다. 선명하게 내건 ‘반운동권’ 깃발과 특이하고 다양한 이력들로 출마할 때부터 화제를 몰았습니다. 그는 얼마 전 이미 탈퇴한 한총련을 ‘다시금’ 탈퇴하겠노라고 굳이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보수언론으로부터는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았습니다. 보수언론은 그가 ‘학생운동의 지평을 바꾼 용기 있고 멋진 청년’이라며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양치기 청년’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고려대 의대 입학 경력까지 검증의 도마 위에 오르는 중이라고 하니….

황라열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활기찬 목소리로 응대를 하더군요.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당당한 변명이 되돌아왔습니다. “아, 그거요. 공식 프로필에 실린 게 아니라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띄워놓은 거였어요.” 그리곤 5년전 에 기고할 뻔 했으며 돈도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문화 담당기자에게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 기억 없었습니다. 원고료 지급 전산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는 왜 굳이 수습기자 경력을 사칭했을까요. 거짓이 한 껍질 벗겨지자 왜 끝까지 근거가 희박한 기고 미수(!) 경력에 집착하는 걸까요. ‘수습’이 안됩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님의 뻥, 위험합니다. 뻥 차일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