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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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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거리

등록 2006-05-04 00:00 수정 2020-05-02 04:24

▣권보드래

언젠가, <조선일보>보다 안티 조선을 더 싫어하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안티 조선’과 ‘조선일보 제자리 찾아주기 운동’이라는 이름이 경합을 벌일 때 후자가 채택되길 열심히 바랐노라고, 결국 명목에서나 실질에서나 ‘안티 조선’이 운동의 방향이 된 뒤에는 차라리 <조선일보> 편을 들고 싶기마저 했노라고, 하여 몇 달은 구독까지 했노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안전지대에서 큰소리치는 듯한 인상을 피할 수 없었노라고, 자기 정당성을 소급 적용하려는 욕망마저 느껴졌노라고, 그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80년대, 그 헌신의 순간

벌써 여러 해 전 일이다. 대학의 기혼자 기숙사에 살 무렵이었으므로, 현관 앞에 놓인 <조선일보>를 집어들고 와야 한다는 건 거의 고역이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눈에 띌세라, 눈먼 욕이라도 먹을세라 전전긍긍하는 꼴은 가관이었을 게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위해 순교한다는 건 영 못할 짓이었다. 몇 달 뒤 이사를 핑계로 냉큼 구독을 끊었고, 결국은 신문 일체를 끊고 말았다. 다른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살긴 영 그른 위인이라는 걸, 그때 다시 깨달았다.

60년대 말에 태어나 8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닌 나는 뭐든 함께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세미나, 토론, 집회, 시위, 술자리. 누가 주도하는지 알 수 없었으되 누구라도 열심이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유전자 수준에까지 입력돼버리지 않았나 싶다. 재야 학술단체에 가입하고, 연구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혹은 학회를 열고 세미나를 조직하면서, 동료 및 선후배들과 함께하는 건 늘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 세미나냐?” 종종 지청구를 들었지만, 세미나 외엔 당최 공부 방법을 익히지 못한 터에야. 아니, 그리고 내 스스로 그걸 사랑하고 있는 바에야.

소주에 김치찌개 곁들여 나누던 노래의 몇 소절도 이 감각엔 녹아들어 있을 터이다. 저쪽 자리에서 시작된 노래 한마디가 이쪽으로 퍼지더니 다시 옆자리로 전달되고, 결국은 커다란 학사주점 가득히 똑같은 노래가 울려퍼지던 기억 같은 것. 혹은 놀라울 만큼 열성적이었던 선배들의 얼굴이 가득히 떠오르기도 한다. 팀이며 학회에서, 대체 왜였을까, 자기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는 데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껏 세미나 따위를 준비하면서, 그 기약 없었던 일치며 헌신의 순간을 반추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내 몫은 그렇다. 독학자의 길이 부러울 때가 있지만 그건 이미 능력 밖이리라. 패거리, 라고 해야 할까. 그 내부의 인정만 얻는다면 세상의 편견 따위 너끈히 대적할 만한 공통의 근거― 나는 계속 그 감각을 찾을 터이고 그 감각 속에서 가능한 한 생산적이고자 노력할 터이다. ‘황빠’를 경계하고 ‘안티 조선’을 경계하고, 그러곤 그토록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같은 지평 위에 놓아버리는 나 자신을 경계하면서. 무능력하기 때문에 패거리를 지은 건 아니었다고 되새기면서.

어떤 패거리를 상상하는가

그러나, 기실 오래전부터 무능력해졌던 건 아닌가? <조선일보>에 대해, 친일 문제에 대해, 과거사 청산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답답한 건 ‘밖’의 검열이 아니라 ‘안’의 검열이다. 늘 정치적으로 올바르고자 하는, 혹시 틀릴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스스로 속내를 가리고 또 가리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한 번도 젊어본 적 없이 늙는구나, 하는 탄식이 흘러나올 지경이다. 개방된 성 의식에 발랄한 상상력을 갖고 최신 유행을 두루 섭렵한다 한들, 정치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강박에 잡혀 있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틀릴 수 있고 잘못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면,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서로 힐끔힐끔 눈치 보는 게 고작이라면 패거리를 무슨 짝에 쓴단 말인가? 그러므로 가끔 궁금하다. 상상 속의 그들, 똑같은 신문과 잡지를 보고 선거 땐 똑같은 번호를 찍고 똑같은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 내 안이자 밖인 양 여겨지는 그들은, 지금쯤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어떻게 저마다의 기묘한 패거리를 상상하고 있는지.

*권보드래씨 기고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다음호부터는 이계삼(경남 밀양중 교사)씨와 연애상담가 임경선씨가 돌아가며 ‘노땡큐’를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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