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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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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육림의 기억

등록 2006-03-23 00:00 수정 2020-05-02 04:24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최근 졸지에 타사 기자들의 전화 취재에 응대했다. 한때 내가 한나라당을 출입했고 출입 초기 3명(4명이었는데 한 명은 ‘명예남자’였으므로)이던 여기자가 출입하는 동안 13명으로 늘어난 덕에 이른바 ‘남기자들의 카르텔’을 부순 주역처럼 비친 탓이다. 사람들은 성폭력범이 버티기하는 당을 드나들었던 ‘여기자’의 이번 최연희 성추행 사태에 대한 논평을 듣고 싶어했고, 무엇보다 ‘당한 적’이 없는지 알고 싶어했다.
내가 출입하던 2003년 전후에는 정치권에 ‘주지육림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말하자면 정치인과 기자가 ‘짝짜꿍’이 돼 룸살롱에 갔다는 말이다. 지연·학연·기타 등등이 핑계였다. 계보 정치가 끝자락이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정치자금법 개정 전 모아둔 ‘스폰서 비용’도 좀 남아 있고, 무엇보다 2004년 총선 전이므로 물갈이도 대폭 안 됐을 때였다.
어느 날 여의도의 한 룸살롱에 십수명의 남자들이 모였다. 학연을 앞세워 새로 출입하는 나를 환영하는 자리였다. 비용은 유력 남자 정치인 쪽에서 냈다. 모두들 자리를 잡고 앉자 ‘언니들’ 몇몇이 선을 뵈었다. 일대일로 앉히지는 않았는데 군데군데 박아넣느라 예닐곱 명이 들어왔던 거 같다. 나를 위해선 ‘남자 도우미’를 불러준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타협책이란 “낯가림이 심하니 대신 이 자리의 한 명을 내 짝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한 일간지의 남기자를 낙점한 것이다(본인의 기분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날 뒤늦게 합류한 또 다른 정치권 인사가 내 옆에 앉자마자 술을 왜 안 따르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술에 관대한 나는 별 생각 없이 “이 인간은 지 인사도 안 하고 다짜고짜 따르라니 굉장히 고팠나 보다”고 여기며 잔을 채워줬는데, 그는 나중에 내가 기자인 걸 알고 깜짝 놀라며 사과를 했다. 도우미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미 눈앞에서 도우미들을 끼고 앉아 술 마시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데 술 따르기를 강요받는 것 정도야 대수도 아니었다. 이렇게 ‘같이 망가지면’ 성찰력이 둔화된다. 덕분에 남자들은 나를 자기들의 ‘일원’으로 대접했고 온갖 정치권 뒷얘기가 펼쳐졌다. 나는 그저 술이 좋아 퍼마셨다. 중요한 뉴스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두고두고 숙제를 안겼다. 룸살롱 문화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갈지 말지, 간다면 어떻게 굴어야 할지…. 나뿐만 아니라 연조 짧은 남기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술자리에 대해서는 상투적인 이데올로기가 있다. 취재원과의 ‘스킨십’을 위해 자주 가져야 한다거나, 은밀한 자리에서 주요 정보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이다. 특히 여자가 가물에 콩나듯 하는 조직이나 출입처에서 그런 얘기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 아마 이런 ‘이데올로기적 부담’이 내가 겪은 피해라면 피해일 것이다. 비슷한 연배의 남기자들은 하지 않을 고민이었으니까. 하지만 골프와 마찬가지로 그건 술접대를 받기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남기자들이 수십 년 묵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이 바뀌어 그렇게 얻은 정보란 가치가 떨어진다. 백 번 양보해 다른 언론사보다 반나절 빨리 특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그 뒤로도 룸살롱에 갈 기회가 있었으나 ‘거시기’할 것 같으면 기꺼이 빠졌다. 나의 결론은 상식과 가치관에 반하는 술자리에서 몇 마디 얻어듣느니 기꺼이 낙종을 택하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런 남기자들도 점점 많아져 우리는 따로 즐겁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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