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어디서 많이 본 ‘개그’다 싶었다. 판사님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구속은 관례”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판사님의 ‘관례’ 앞에서 무기력했다. 성경에 ‘전쟁을 연습지 말라’는 구절이 있어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스무 살 청년은 그날로 구속됐다. 이름 대신 수형번호로 불리며 재판장에 오갈 때마다 포승줄에 묶여 개처럼 끌려다닐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관례’의 말뜻을 찾아봤다. “이전부터 해내려와서 습관처럼 되어버린 일.” 우리나라에서 법을 가장 잘 아신다는 할아버지들이 전 국민을 배꼽 잡게 만들었던 개그 가운데 ‘관습’이라는 게 있었던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해왔다. 이는 ‘관례 헌법’이다! 할아버지(그중엔 할머니도 한 명 있다)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패러디한 판사님의 센스! 할아버지들이 이를 되받아 더 무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할까봐 무섭다. 관례적으로 어떤 무리에나 ‘꼴통’이 섞여 있다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같다.
‘관례’적으로 심한 일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학생들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어온 교사들의 오래된 관례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바리캉 관례’ 앞에서 “두발 자유는 기본권이다”라고 외친 인권위의 권고는 무시됐다. 이러다 인권위 권고 무시하는 게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관례가 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전국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만든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가 지난해 12월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은 교사에게서 삭발을 당할 때 가장 큰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교사들이다. 2002년 12월 인권위 조사에서 두발·복장의 자유를 보호받을 권리에 대해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교사는 5.7%밖에 없었다. 두발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는 많지만, 우리 모두 이 문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잘 알고 있다. “학생들아 미안하다. 너희 말 무시하는 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잘 지켜져온 관례잖니!”
그렇지만 ‘관례’를 깨보려는 움직임도 있다.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 원외투쟁을 이끌고 있는 유신공주께 직격탄을 날린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의원은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wonheeryong.do)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적었다. 당 최고위원회에서 집중포화를 맞고 집에 돌아가 컴퓨터를 켜고 쓴 듯 입력 시간은 1월5일 밤 11시47분이었다. 딱 한 문장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래도’와 ‘돈다’ 뒤에 왜 마침표 두 개씩을 찍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천동설을 포함해 세상에 관례가 아니었던 것은 하나도 없다. 판사님이 관례에 맞서 스무 살 청년에게 집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줬다면, 교사들이 자신 앞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오라”고 말해줬다면 우리 사회가 좀더 살맛 나는 곳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데 기사 쓰기 지쳐 관례적으로 그냥 한번 해보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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