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명숙/ 작가
미국 ‘민권운동의 어머니’로 추앙받던 로자 파크스가 지난 10월24일 92살로 눈을 감았다. 흑백 분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버스에 탔다가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뒤의 흑인석으로 가라는 운전사의 요구에 불응해 경찰에 구속됨으로써 민권운동에 불을 지핀 지 정확히 50년, 반세기 만이다.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면
그녀의 타계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었다. 사건의 발생지인 몽고메리와 그녀가 오랜 세월 살아온 디트로이트에서 그녀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행사가 성대히 열렸을 뿐 아니라 미국 전체가 죽음을 애도하도록 하기 위해 그녀의 주검이 이틀간 워싱턴 의사당 건물에 안치되었다. 이는 대통령직을 지낸 사람들이나 전쟁영웅들에게만 허용되는 영예스런 일로 여성으로선 첫 번째 케이스였다. 이곳을 찾은 조문객만 3만명 정도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추모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행사들 때문에 장례식은 임종뒤 열흘 가까이 지난 11월2일에야 치러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제시 잭슨 목사, 오프라 윈프리 등 내로라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유명인들도 경쟁하듯 행사장과 장례식장을 찾아 애도와 경의의 언사들을 쏟아냈다. 특히 같은 앨라배마 출신이자 흑인여성인 콘디 라이스 국무장관은 “그녀의 용기가 없었다면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며 자신 또한 그녀에게 빚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같은 미국의 ‘소동’(?)을 이곳 한국 땅에서 지켜보는 내 심정은 참으로 묘하다. 경이롭다고 할까, 착잡하다고 할까. 재봉사로 일하던 42살의 평범한 아줌마 로자 파크스가 버스 좌석에서 일어서기를 거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녀가 활동하던 지역에는 26살의 애송이 목사 하나가 부임해 있었다. 이름은 마틴 루서 킹. 다 알다시피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민권운동을 이끌며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해나간다. 그러나 마틴 루서 킹이라는 이름이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도 계속 살아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미국 사회에서는.
만약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아마도 그녀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을까. 잘해야 남성 영웅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한 부록으로 한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로자 파크스는 인간의 존엄을 믿는 위대한 용기의 소유자였지만 그녀의 행동은 버스좌석 이동거부라는 ‘단순한 것’이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로자 파크스보다 더 높고 깊은 이상을 바탕으로 훨씬 더 큰 위험을 무릅쓰며 신념을 실천으로 옮긴 ‘평범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권인숙과 김경숙은 새롭게 기억돼야
지난 80년대 군사독재 정권의 반인권적 만행을 여성의 목소리로 고발한 권인숙이나 노동자의 삶을 절규하다 죽어간 YH사건의 김경숙이 로자 파크스보다 못할 게 무엇이 있는가? 그러나 미국 사회는 로자 파크스를 영원히 기억해도 한국 사회는 권인숙이나 김경숙을 그렇게 대접하지 않는다. 로자 파크스가 사건을 일으킨 버스는 박물관에 전시돼 있고, 남편이 죽은 뒤 그녀가 만든 ‘로자 레이먼드 파크스 자기계발 연구소’는 매년 여름이면 청소년들을 상대로 미국 민권운동의 역사를 가르치는 체험교육을 하고 있다. 또 미국 사회는 그녀를 계속 기억하기 위해 ‘로자 파크스 자유상’을 제정했고 몽고메리에 그녀의 이름을 딴 도서관도 만들었다. 대통령 자유메달(1996)과 의회의 금메달(1999)이 그녀에게 수여되기도 했다.
우리는 권인숙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흔히 하는 대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주인공으로만 그녀를 불러낸다면 그건 그녀에 대한 모욕이다. 그녀뿐 아니라 인권과 여권에 대한 모독이다. 권인숙과 김경숙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평범한 영웅들’은 개별 사건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인권과 여권, 인간다운 삶 보장 등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맥락에서 재조명되고 새롭게 기억돼야 한다. 로자 파크스가 버스좌석 이동거부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 민권과 자유, 평등의 상징으로 기억되듯.
‘노 땡큐!’필진이 박민규·김신명씨에서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교수)·권보드래(덕성여대 강사)씨로 바뀝니다. 그동안 좋은 글 써주신 박민규·김신명숙씨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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