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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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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모델 박근혜

등록 2005-10-26 00:00 수정 2020-05-02 04:24

▣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너도 저렇게 될래?”
엘리베이터 수리 전문가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꼬마 한 명을 데리고 지나가던 한 30대 여인이 잠시 흘겨보더니 멈추더랍니다. 그러고는 일하는 쪽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이렇게 속삭였다는 겁니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고생하면서 살게 된다. 알았니?”
‘비포모델’이라는 게 있습니다. 텔레비전 홈쇼핑 다이어트 식품광고에 나오는 뚱뚱한 모델들 말입니다. “먹으면 이렇게 살 빠진다”와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최악의 상태’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이들입니다. 물론 그 옆엔 늘 날렵하고 예쁜 ‘애프터모델’이 공존합니다. 그 광고방송을 볼 때마다 몸매에만 ‘before & after’가 있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합니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번듯한 빌딩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애프터’입니다. 기름때에 전 작업복을 입고 낑낑거리며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면 ‘비포’입니다. 뚱뚱한 ‘비포모델’ 역시 인생의 퀄리티로 치면 ‘비포’입니다. 직업에는 분명히 귀천이 있습니다. 통속적인 기준으로 볼 땐 그렇습니다. 비포가 아닌 애프터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 아니, 내 자식만은 사회적 ‘애프터’로 키우기 위해 이 땅의 부모들은 그토록 사교육에 목을 맨 걸까요.

아무튼 비교당하는 건 불쾌합니다. 자녀들은 툭하면 옆집 아이와 성적을 비교당합니다. 월급, 아파트 평수, 귀가시간, 심지어는 성격에 성적 능력까지 동네 아저씨와 비교당한다고 툴툴대는 가장도 있습니다. 직장 동료와 능력을 비교당할 땐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조 본프레레 감독은 “나를 아드보카트와 비교하지 말라”고 흥분했고, 그 이전 코엘류 감독은 “히딩크와 비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 이회창씨는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지 말라”며 격노했습니다. 덕분에 이명박 서울시장은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했습니다. ‘비포모델’의 낙인은 너무 아픕니다. 잔인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를 ‘비포모델’로 임명합니다. 강정구 교수 사건을 시빗거리로 삼아 청와대에 대답하라고 요구한 그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태도를 물었는데 왜 대답 안 하냐고 거듭 떼쓴 그녀. ‘구국운동’의 횃불을 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입니다. 세속의 기준을 떠나 상식과 공익을 생각할 때, 그녀의 의식상태는 끔찍하게시리 ‘구시대 모델’입니다. 그 구국운동은 ‘구국’(舊國)의 우물처럼 보입니다. 박 대표께서는 <한겨레21> 이번호에 김소희 기자가 쓴 ‘라이프 & 트렌드- 홈쇼핑 비포모델의 세계’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사에 따르면, 비포모델에게 ‘오버’는 금물입니다. 혐오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리얼하되 자연스럽게 망가지면 대박이 터지지만, 험하게 망가졌다간 매출 확 떨어집니다.

부디 이제는 ‘애프터’로 거듭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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