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어차피 남녀 둘이 손잡고 지뢰밭을 건너는 일과 같은 것
부모의 반대를 무릅썼던 신혼시절을 떠올리며 후배 부부를 축복했네
▣ 김선주/ <한겨레> 전 논설주간·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직장에 다니던 후배 둘이 결혼을 하게 되어 주례를 서게 되었다. 오랜 연애 끝에 서른 중반의 나이로 하는 결혼이었다. 김광규 시인은 20대 젊은이들의 결혼식 광경을 보고는 이 험난한 세상으로 신랑신부 한쌍을 새로 내보내는 것이 과연 축복하고 희희덕거리기만 할 일인지 근심과 걱정에 가득 찬 시를 쓴 적이 있다. 나도 실은 모든 결혼이 불안불안하다. 그래서 주례를 선다는 것이 겁이 나고 축복의 말이 자칫 기만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주례는 절대로 안 선다는 원칙을 정해놓았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라든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혹은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성혼선언문은 그저 글이고 말일 뿐 어떤 구속력도 진실성도 없다. 평소 결혼식장에 가서 주례가 신랑신부를 향해 이러저러한 것을 서약하겠습니까 말하고 이에 신랑신부가 씩씩하게 예 대답하는 것이 어쩐지 거짓말 같고 바보스러워 보였다.
급전을 빌려 제왕절개를 하다
그러던 내가 주례를 서게 된 것이다. 평소에 참하게 보아왔던 신랑신부이다.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두 남녀가 주례를 부탁하는데 거절이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한 직장에서 오랜 연애를 했지만 그렇게 요란스럽지도 않았다. 이 결혼은 괜찮은 결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 것 다 알고 볼 것 다 보고 그러고도 결혼을 결심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 사랑도 시들해지고 겁나게 황홀하던 상대의 눈동자도 그저 그래지기 때문이다. 오랜 연인이 헤어지는 것은 오래 살던 부부가 덤덤해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도 결혼을 결심했다니 둘 사이에 많은 신뢰와 역사가 쌓여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갔다. 주례사로 무슨 이야기를 준비할까 궁리하다가 내 결혼은 어떤 결혼이었던가를, 또 나의 신혼 시절이 어떠했던가를 떠올리니 내가 얼마나 불안한 결혼을 했는지가 생생히 떠올랐다.
수유리 지나 화계사 근처 어떤 집의 문간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것이 서른살 되던 해였다. 그 집을 떠날 때까지 친정, 시집 식구 어느 누구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우리 각자가 자라고 살아왔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8천원의 방 한칸짜리였다. 지금은 번화해진 곳이지만 당시는 서울 외곽에 있는 한적한 동네였다. 이부자리와 장롱을 놓고 책장을 놓고 나서도 그 방은 여유가 있었다. 스무명의 친구들을 초대하곤 주인집에서 큰 밥상 두개를 빌려와 방에 펼쳐놓으니 앉을 자리가 마땅찮았다. 그래도 자니브러더스(당시 인기 있던 남성 4중창 그룹)식으로 어깨를 엇비슷이 겹쳐서 옆으로 앉아서 무사히 손님을 치렀다. 아마 단칸방에서 밥을 먹은 인원으로는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게 아닌가 싶다.
결혼 1년 만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 서른한살이었다. 신문기자 생활을 해서 제법 세상물정을 안다고는 했지만 장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임신을 했다. 아이를 낳는 데는 2박3일만 입원하면 되고 비용은 5만원이면 뒤집어쓴다고 했다. 넉넉하게 10만원을 준비해놓고는 출산날을 기다리며 근심걱정 없이 살이 찌고 배는 불러왔다.
병원에 가서 진통을 하다가 갑자기 비상사태를 맞았다. 하루 종일 아팠다 말았다를 되풀이했지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비명을 지를 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출산의 고통을 사람들이 과장한 거 아닌가라며 역시 나는 잘하고 있어라며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렸다. 아이낳은 것도 별거 아니잖아 싶었다. 퇴근하기 전에 들른 의사는 아이의 심음이 좋지 않고 제대로 진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이에 탯줄을 목에 감았다고 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위험하다며 갑자기 제왕절개를 선언했다. 주위가 갑자기 부산해지고 옷이 벗겨지고 전신에 소독약이 뿌려졌다. 소독약의 한기보다는 돈이 무지하게 들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온몸이 오싹해졌다. 나와 내 남편은 제왕절개를 할 만한 돈을 가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수술동의서가 전해지고 나는 들것에 실려서 수술실로 옮겨지는 동안 내내 한기로 온몸을 떨었다. 그것은 수술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돈이 든다는 사실, 내가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동안 남편이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돈이 마련될 때까지 아이가 뱃속에서 좀 기다려줄 수도 있지 않은가 바랐지만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마취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남편에게 병원비가 얼마나 드냐고 물었다. 남편은 염려 말라고 했다. 병원에서 열흘을 지내고 45만원인가를 지불하고 퇴원을 하여 화계사 옆의 단칸방으로 우리는 세 식구가 되어 돌아왔다. 출산 비용은 ‘딸라이자’라는 것으로 해결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별로 주변머리 없던 남편은 신문 구석에 나온 급전 빌려줍니다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남편이 양가에 전화해서 알렸지만 친정, 시집 식구 아무도 와보지 않았다.
그래, 모든 결혼은 위험한 거야
양가에서 모두 반대한 결혼이었다. 또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 결코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해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노라고 배짱 좋게 선언을 하고 한 결혼이었다. 결혼 일주일 전인가 내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혼식장에서 딴따단 따 하고 들어가는 중간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되돌아 나와라 창피할 것 없다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결혼에 가장 힘을 주었던 것이 친정어머니의 이 말씀이었다. 돈도 지지리 없었고 직업의 안정성도 없었다. 태생적으로 친정이나 시댁에 손을 벌린다든가 우리의 결혼 전선에 이상이 있다는 내색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결혼생활 내내 곳곳에서 지뢰가 터졌다.
그런데도 30년을 살아왔다. 그래, 모든 결혼은 위험하다. 불안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떨어지는 것은 또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인생에서 불안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주위의 축복 속에 하는 결혼도 금방 깨지고 몇년 못 갈 거라는 결혼도 수십년을 가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이란 남녀 둘이 손잡고 지뢰밭을 건너는 일과 같다. 비록 지뢰밭이 완전히 터져서 이혼을 하더라도 지뢰밭을 건너본 사람만이 아는 인생의 깊이를 지뢰밭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테니까. 그래 주례를 서자. 이것이 내가 평소의 지론을 깨고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된 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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