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2026년 1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 대통령 공식 환영식이 끝난 뒤 어린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새해가 왔다. 지극히 사적인 넋두리 혹은 잡감 몇 마디로 새해를 맞는 소회를 말하고자 한다. 먼저, 묵은해 이야기다.
2025년 9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심각한 누수 문제를 겪었다. 우리 집이 누수 가해자이고 바로 아래층 사는 사람들이 피해자였다. 아래층 사람들은 과거에도 두세 번 자잘한 누수 문제로 대면한 적이 있어 완전히 낯선 이웃은 아니다. 몇 년 만에 다시 똑같은 누수 문제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대면하자 처음에는 다 같이 멋쩍게 웃었다. 우리는 모두 이번에도 예전처럼 유능하고 숙련된 기술자가 금방 물이 새는 곳을 찾아 며칠 뚝딱 간단하게 수리하면 끝날 줄 알았다. 다 해결한 뒤에는 과일 바구니 등을 들고 찾아가 공손하게 사과한 뒤, 낡고 부실한 아파트 욕을 잠시 몇 마디 나누다가 가볍게 웃는 얼굴로 헤어지는 해피엔딩이 되리라 생각했다. 예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 누수는 절대 예전 같지 않았다.
업계 경력만 20년이 넘는다는 숙련된 기술자를 불렀다. 하지만 사나흘이 돼도 누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일주일이 넘어가자 아래층 부부가 찾아왔다. “안방 천장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겠다”고 했다. 부부의 표정은 예전 같지 않았다. 최대한 화를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부는 누수 상황을 직접 보라며 나를 그들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현관문을 열자 눈부신 집 내부가 보였다. 얼마 전에 새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집의 안방 천장에서 우리 집에서 새는 냄새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방 안 곳곳에 물받이 대야가 놓여 있었다. 천장 벽지는 뼈가 드러난 살처럼 너덜너덜해져 조만간 시멘트 가루가 떨어질 모양새였다. 만일 우리 집이 누수 피해자고 안방 천장이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면, 나는 그 부부처럼 억지로 ‘화를 억누르는’ 표정조차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사실 몇 년 전 우리 집도 위층으로부터 누수 피해를 봤다. 나는 당시 두세 차례 한밤중에 올라가 당장 모든 수도관을 잠그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물이 흐르는 모든 배관을 다 조사했지만 누수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넘어갔다. 급기야 석 달째인 마지막 12월이 왔지만 물은 여전히 아래층 천장을 뚫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사이 우리는 누수 가해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했기에 수도관을 잠그고 인근 싼 호텔을 전전하거나 다른 지역을 떠돌기도 했다. 유능한 기술자만 세 번 바뀌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담당 직원과 아래층 부부, 우리 집으로 구성된 ‘누수 단체대화방’이 꾸려져 하루에도 수십 차례 각종 대책이 오갔다. 두 달째가 넘어가자 서로 인내심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록 가해자이지만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터라 나름대로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 있었다. 기술자들이 바뀌면서 부르는 수리비도 점점 올라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기가 막히고 답답한 마음에 아예 베이징 집을 버리고 월세가 싼 지방 소도시로 낙향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아래층 부부가 문을 두드렸다. 갑자기 물이 더 심하게 떨어지고 있다며 혹시 몰래 수도 밸브를 열어 물을 쓰는 것이냐고 따졌다.(샤워하기 위해 잠깐 물을 쓰기는 했다.) 분위기는 여차하면 거의 육박전으로 치달을 정도로 험악해졌다. 서로가 억누르고 있던 온갖 감정이 폭죽처럼 한꺼번에 터져나오려는 찰나, 소식을 듣고 달려온 관리사무소 직원이 중재하며 이렇게 호소했다.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어요. 조금만 더 서로 이해하자고요. 이해 만세!(理解萬歲)”
그 말이 효험을 발휘했는지, 크리스마스 며칠 전 기적처럼 누수 원인을 찾아냈다. 며칠의 집중적인 공사와 관찰 기간을 거쳐 더는 아래층에 누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최종 확인되자, 드디어 3개월가량에 걸친 누수와의 전쟁이 일단락됐다. 연말 무렵, 근처 이케아 매장에서 아래층 부부와 우연히 마주쳤다. 다들 누수로 엉망이 된 집 곳곳을 손보는 데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온 것이었다. 너무나 극적인 우연이어서 서로 마주 보며 잠시 한바탕 웃었다. 아래층 부부는 “인연이 너무 깊고 진하다”며 나중에 밥이나 함께 먹자고 했다. 그날 저녁, ‘누수 단체대화방’을 폭파하기 전 다들 한마디씩 덕담을 나눴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이해 만세!” 어쨌거나 해피엔딩이었다.
2025년을 보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한마디를 꼽는다면 바로 이 네 글자다. ‘이해 만세!’
‘이해 만세’는 1985년 이후 중국에서 가장 유행했던 구호다. 중국 관방지 인민일보는 2001년, 중국에서 근 100년간 가장 영향력을 미친 구호 중 하나로 ‘이해 만세’를 선정했다. 이는 1978년 이후 중국 개혁개방기를 대표하는 구호이기도 하다. 이 구호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5년 5월15일이다. 당시 22살 인민해방군 군인이던 류융이 베이징사범대학 강당에서 연설하던 중 학생들 앞에서 ‘이해 만세’라는 네 글자를 썼다. 그해 중국 공청단과 인민해방군은 ‘변방을 지키고, 청춘을 바치자’(保邊疆, 獻青春)라는 주제로 주요 전구(전투구역)에서 복무하는 젊은 군인 6명을 투입해 각 대학가를 순회하며 강연회를 열었다. 연설 내용은 주로 변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의 헌신과 노고에 대한 내용으로 대학생들의 애국심 고취가 주목적이었다.
이 순회 강연회에서 대다수 학생은 변방을 지키는 또래 젊은 군인들의 희생정신에 감명했지만 일부 학생은 “전사들이 용감한 것은 결국 공을 세우려는 목적 때문 아니냐”며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연설하던 류융은 일부 학생의 이런 태도를 보고 즉석에서 붓을 들어 ‘이해 만세’라는 네 글자를 써 내려갔다. 훗날 출판된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자신이 이 구호를 쓴 목적은 “후방의 청년들이 자신과 같은 또래 젊은이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치며 싸우는 용감한 정신의 본질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류융이 쓴 이 네 글자는 이틀 뒤인 5월17일 중국청년보 1면에 ‘이해 만세’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되면서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그 뒤 이 구호는 1980~1990년대 개혁개방기 중국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중재하는 정치·사회적 구호로 다방면에 활용됐다. 수많은 중국 언론은 이 구호를 “한 시대를 규정하는 정신적 표식”이라고 했다. 류융은 회고록에서 “개혁개방 이후 예전과는 판이해진 생활과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세대·직업별·도농 등 각계각층의 심리적 간격이 커졌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서 이 네 글자의 단순한 구호가 사람들에게 가닿았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해 만세’는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구호 중 하나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2026년 1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국빈 만찬 뒤 샤오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샤오미폰은 경북 경주 정상회담 때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공동취재사진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해왔습니다. 각종 위험과 도전의 시련을 이겨내고 계획된 목표와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며, 중국식 현대화는 견고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경제력, 과학기술력, 국방력, 종합 국력이 새롭게 향상됐습니다. 강산은 더욱 푸르고 아름다워졌으며 인민 대중의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은 끊임없이 높아졌습니다.”
묵은해의 마지막 날, 시진핑 주석의 신년사를 들으며 새해를 맞았다. 올해 시 주석의 신년사 내용은 중국몽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긍정과 낙관으로 가득 차 있다. 2025년 시 주석의 어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쓰인 ‘인민 대중의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의 증대’는 신년사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중국 인민 대중의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이 갈수록 높아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 확실한 점은 세계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해 축포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인 1월3일 새벽, 미국은 ‘확고한 결의’라는 군사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전격 체포, 압송해 갔다.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령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섬뜩한 장면이었다. 마두로의 전격 체포 작전을 보면서, 나는 20세기 중국의 대표적인 신유가 사상가인 량수밍이 평생을 품고 살았다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이 세계는 좋아질 것인가?”(這個世界會好嗎)
1893년생인 량수밍은 청조의 몰락과 제1차 세계대전, 일본 침략과 국공 내전 등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중국 내외의 격동기를 겪었다. 그리고 1949년 사회주의 신중국 건국을 거쳐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기까지 중국이 걸어왔던 온갖 부침과 혼란의 현대사를 살다가 1988년 별세했다. 그의 아버지 량지는 청조 말기 고위 관료 출신으로, 1918년 (현재 베이징 중난하이 부근)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량지는 자살하기 사흘 전, 유럽에서 벌어지는 제1차 세계대전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들에게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세계는 좋아질 것 같으냐?” 회고록에 따르면 량수밍은 당시 이렇게 대답했다. “세계는 하루하루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흘 뒤, 이 세계에 절망한 아버지는 자살했고 그의 아들이 ‘좋아질 것’이라 믿었던 세계도 그리 많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량수밍은 아버지가 유언처럼 남긴 이 질문에 답하는 심정으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2026년 1월4일, 이재명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 이후 9년 만의 방중이다. 그사이 한-중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고 한국 사회에는 반중·혐중 정서가 ‘독버섯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엄동설한 같은 두 나라를 오가며 수많은 실망과 절망을 느꼈다. 서울 광화문 앞에서 매일 ‘차이나 아웃’이라는 팻말을 들고 반중 구호를 외치는 극우 시위대와 청년들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비호감이라는 여론조사 등을 보면서 ‘한-중 관계는 과연 좋아질까’라는 회의감도 들었다. 하지만 9년 만에 국빈 방문을 한 이 대통령이 시 주석과 만나서 “양국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희미하나마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누수 문제로 석 달 가까이 아래층 이웃과 피 말리는 생활 전쟁을 치르다 막판에는 감정 충돌이 일어날 뻔도 했지만 결국에는 꾹 참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를 대충돌의 위기에서 구했다. 새해에는 한국과 중국도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를 바탕으로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이 갈수록 높아졌으면 좋겠다. 세계가 안 좋아질수록 우리는 ‘이해하는’ 관계를 이어가기를. ‘이해 만세’!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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