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명숙/ 작가
“일년에 두번 있는 명절, 서로의 본가에서 교대로 지내기로 결혼 전에 약속했다. 결혼 뒤 첫 명절인 올 추석은 식을 올린 뒤 아버지 산소에도 못 다녀왔으니 우리 집에서 먼저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시가 식구들이 돌아가며 화내고 욕한다고 한다. 그럼 시가에 먼저 가지 뭐, 양보하려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무슨 ‘우끼는 일’인가 싶다. 무슨 권리로 그들이 내게 화를 내는가? 게다가 출가외인이 상을 차리면 안 좋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당신들이나 제대로 하셈~ 당신네 아들, 내 남편이나 데리고 가서 부리셈~.”
과중한 노동이 스트레스의 핵심일까
추석 전 한 여성주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 명절만 되면 이슈가 돼온 명절증후군의 핵심 의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이 쏟아내는 명절증후군 관련 보도들은 이 의제를 (의도적으로) 비켜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평성’이다.
명절증후군에 대한 주류(남성) 언론의 시각은 ‘남자들의 명절, 여자들의 노동절’이라는 표현에 그대로 집약돼 있다. 여자들이 명절만 되면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니 남자들도 빈둥거리며 먹고 마시지만 말고 설거지도 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이라도, 즉 립서비스라도 그럴듯하게 날려주라는 것이다. 과연 여자들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의 핵심이 ‘과중한 노동’일까? 만약 남자들이 명절 노동의 절반을 분담한다고 가정하면 여자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해소될 것인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내 일이라면, 합리적 이유가 있는 일이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그 일을 한다.
명절이 여자들에게 그토록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것은 명절 모임 내내 계속되는 불쾌한 감정들 때문이다. 남자만 귀하고 여자는 수발이나 들어야 하는 노골적인 차별에 대한 분노, 자신의 부모와 조상은 무시하거나 영원한 2등으로 전락시키는 ‘시가 중심주의’에 대한 부당함,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혹은 맏며느리도 아닌데 차례 부담을 책임져야 하는 억울함, 자기 딸은 오기를 기다리면서 며느리의 친정행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부모에 대한 섭섭함… 이런 감정의 근저에 있는 것은 바로 ‘공평하지 못함’이다. 여자와 남자 사이, 며느리와 며느리 사이, 딸과 며느리 사이에 공평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남자들간에도 공평성의 결여가 명절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부분이 있다. 우리 가족문화가 공평하게 변한다면, 아내와 남편 사이, 처가와 시가 사이의 모든 가족관계에 공평성이 지배적인 덕목으로 자리잡는다면, 어느 한쪽에 과부하되는 노동도 없을 것이고 명절 뒤 티격태격 다투는 일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공평성은 서로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하면 여자들도 ‘저지른다’
추석 전날 텔리비전 채널을 돌리던 나는 한 케이블 방송의 매우 특별한 프로그램에 빠져버렸다. 이름하여 ‘섹시남 선발대회’. 미국에서 제작된 프로였는데 진행 방식이 미녀대회와 흡사했다. 젊고 섹시한 남자들이 환호하는 여성 관객들 앞에서 미끈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고 춤도 추고 인터뷰도 하고 심사위원들에 의해 등수도 매겨지고…. 기분이 어땠냐고?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예상치 못한 눈의 호사와 여성 권력에 꽤 즐거웠다. 미스코리아 대회 지상파 방송 중계에 반대했던 나와 우리 그룹에 많은 남자들이 눈을 흘겨댔던 심정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 반대가 아니라 공평성을 내세워 미남대회 중계를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 눈을 흘기지 않았을까? 혹은 더 크게 흘겼을까?
명절쇠기와 미인대회의 공평성은 분명히 다른 맥락에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맥락을 따지기 전에 움직인다. 남자들이 하면 여자들도 ‘저지른다’. 공평하게. 그 빛과 그림자를 헤아리려면 양성간 공평성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더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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