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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스타] 대통령을 낚다

등록 2005-09-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종찬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pjc@hani.co.kr


“나, 또 낚인 거야?” “아! 짜증나는 낚시질!”
누리꾼들 사이에서 ‘낚였다’는 말은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왜곡된 인터넷 게시물을 읽고 이를 사실로 믿게 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 낚시질은 인터넷 세상의 신뢰를 좀먹는 ‘공공의 적’이라고 지탄을 받지만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 게시판에는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사실로 서로 낚이고 낚는 댓글이 넘쳐난다.
그런데 누리꾼들의 낚시질에 노무현 대통령이 걸려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월7일 박근혜 대표와의 청와대 회담에서 “강남지역 학생이 서울대의 60%를 차지한다”고 발언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내가 강남 사람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자체가, 서울대 다닌다는 것 자체가 기회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강남지역의 학생이 서울대의 60%를 차지하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다음날 서울대는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과 동떨어졌다”며 “94년부터 2005년까지 전체 신입생들 중 이른바 ‘서울 강남지역’이라고 불리는 강남구·서초구·송파구 출신 학생들의 비율을 분석한 결과 지난 12년간 이 지역 출신 학생의 비율은 전체의 10~14% 선”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뒤늦게 “강남지역이 아니라 재외국민 60%”라고 바로잡았으나 잘못된 통계를 인용한 대통령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누리꾼들은 대통령의 말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급기야 <미디어 다음>의 ‘피리풀’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자신이 대통령을 ‘낚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6월2일자 <미디어 다음> 기사를 보고 몇몇 분들과 교육 문제로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서울대 입학생의 60%가 강남 출신이라고 썼는데 그걸 대통령께서 인용하셨군요.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치 하나 안 틀리고 정확히 60%라고 하신 게 왠지 대통령을 낚은 것 같다는 느낌이 팍 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ㅋ”

피리풀의 주장이 담긴 캡처 화면이 <도깨비 뉴스> 등의 게시판을 떠돌며 입길에 올랐다. “낚으셨네. 장하십니다. 피리풀님. 그 정도의 말도 안 되는 낚시에 걸리는 대통령 아저씨를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국민들은 뭘까요?”(도깨비 뉴스 ‘ㅎㅎㅎ’) “강남은 한강 이남, 낙동강 이남, 영산강 이남, 섬진강 이남 등 모든 강의 남쪽이라는 심오한 철학입니다. 그걸 이해 못하시다니… 이렇게 몰라주니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거죠.”(노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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