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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스타] 외쳐봐 드!라!군!

등록 2005-08-11 00:00 수정 2020-05-02 04:24

▣ 하정민 인턴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foolosophy@hanmail.net

뜨거운 여름, ‘드라군 놀이’라는 댓글 놀이가 인터넷을 휩쓸었다. 한 누리꾼이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글을 올리면 그 밑에 다른 누리꾼들이 “드!”, “라!”, “군!”이라는 댓글을 이어단다. 지난 7월 말부터 누군가 만화책 <스타크래프트>의 한 대목을 흉내내면서 번지기 시작했다. 각종 포털사이트 의견란 등 인터넷 게시판을 점령한 이 놀이는 어느덧 변종을 낳아 드라군 대신 이순신, 전지현까지 바쁘게 ‘출동’시키고 있다.
가벼운 장난 같은 댓글 달기가 의미 있는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은 지는 꽤 된다. 2001년 7월 등장한 ‘쿠키닷컴’은 지금까지 댓글이 이어지고 있는 ‘서사적’ 연작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디시인사이드 엽기 갤러리에 ‘복숭아맛’이라는 누리꾼이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는 제목을 붙여, 먹다 남은 과자조각 사진을 올리자 수천여건의 댓글이 달렸던 사건이다. “이 글 쓸 때만 해도 대학 신입생이었는데… 지금은 휴학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어요”(복숭아맛), “군대 전역하고 다시 리플 답니다. 2년2개월은 참을 만했습니다”(bean)…. 지금도 안부를 묻는 댓글에 이른바 ‘성지순례’차 들른다는 글까지 있어, 현재 조회 수는 47만6천여회, 댓글 수는 1만5천여건을 기록하고 있다.

댓글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엄격한’ 규칙이다. ‘드’와 ‘라’ 사이에 다른 글이 끼어들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 규칙 아래 댓글을 즐기는 현상은 지난 1월 사커월드 게시판을 뒤덮었던 ‘일본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박주영 질책 댓글 놀이’에서도 나타났다. “박주영 오늘 대실망입니다. 4경기 9골이 뭡니까?”(독수리슛)라는 게시글이 올라오자 “저도 실망이에요. 평소 실력이라면 20골은 넣었어야죠”(흑기사), “한 경기 두 골은 앙리나 호나우두 수준 아닙니까”(슈팅라이크지성) 등의 ‘즐거운’ 비난 댓글이 이어진 일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도배로 변질되는 댓글 놀이가 커뮤니티의 물을 흐린다는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컷을 대강 메우려는 <스타그래프트> 작가를 비꼬는 풍자로 시작한 드라군 놀이가 반복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도 한 예다. 최근엔 국외 사이트에 잇따라 진출해 게시판을 도배하다 운영자로부터 내쫓김을 당하는 등 ‘민폐’도 적지 않다. 사이버 공간을 떠돌며 짧게 ‘치고 빠지는’ 촌철살인의 댓글은 발랄함이 살아 숨쉬게 하는 인터넷의 허파다. 다만, 적당할 때 ‘빠지지’ 않으면 허파에 바람 든 꼴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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