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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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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등록 2004-12-24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며칠 전, 몇몇 지인들의 초청으로 송년모임을 겸한 조그만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가 연 ‘개발도상국 여성건강 지원을 위한 후원의 밤’은 질병과 빈곤에 노출돼 있는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 여성과 아동을 돕기 위한 행사였다. 이날 모임에는 평소 이 활동에 관심이 많거나 직접 후원을 하고 있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초청돼 올해 ‘밸런스 이니셔티브’(Balance Initiative·선진국과 후진국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지원활동)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봤다. 올여름 협회의 베트남 지원 프로그램을 이 취재에 나섰던 것이 그 자리까지 가게 한 계기가 됐다.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오랜만에 지인들 얼굴이나 볼 겸해서 참석했는데 조금은 생소한 이 활동이 ‘평등’과 ‘공존’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 때문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우리 주변에도 달동네나 쪽방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널려 있는데 아시아·아프리카 여성과 아동을 돕자는 것이 약간은 어색했지만 저녁식사 전 협회 관계자에게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지금도 지구촌에서는 1분에 1명의 여성이 임신으로 인한 질병으로 숨지고 190명의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있으며, 5명의 청소년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고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10명 중 1명의 어린이가 5살 이전에 사망하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1억명 이상의 어린이 중 97%가 살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규모는 연간 2억6500만달러(2001년)로, 국민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0.063%)로 따져볼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0.22%)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잠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모임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은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여유와 넉넉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들어도 그런 때일수록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는 나눔의 정신도 떠올려보았다.

이제 또 한해를 정리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해 이맘때는 카드빚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두 아이를 한강에 던진 비정한 아버지 때문에 잔인한 연말을 보내야 했는데, 그나마 끔찍한 사건사고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총선의 해로 시작된 올해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위헌 결정,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국회 공전 등 굵직한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한해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더욱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새해를 희망으로 맞을 채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숨을 거두고 두 팔을 벌려 어깨를 활짝 펴봤으면 한다. 여유와 넉넉함을 잃지 않으면 힘겨운 세월이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유와 넉넉함의 원천은 역시 나눔이다. 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강의석군도 알려진 것과 달리 저항보다는 또래들의 인권을 지켜내려는 여유 있는 생각과 자기를 희생하는 넉넉함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을 것이다. 거리의 자선냄비에 지폐는 줄고 동전만 늘어나 모금액이 지난해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지나는 길에 자선냄비에 잠깐 들를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으로 한해 마무리 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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