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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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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각목’으로 시작하나

등록 2004-08-26 00:00 수정 2020-05-03 04:23

제도 시행 뒤 이어지는 막무가내 단속 현장… 무단침입해 집단폭행 · 불법체포 일삼는 공무원들



8월17일 시행된 고용허가제에 사업주도 뜨악하다. 무단 침입해서 합법 체류자에게도 각목을 휘두르는 공무원들. 불법으로 얼룩진 불법 체류자 사냥 현장에 갔다.


▣ 안산=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현장에서 며칠만 일해보면 알 것 아니오.”

지난 8월20일 오후, 고용허가제 취재를 위해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서 만난 한 업체 사장의 심기는 불편해 보였다. 고용허가제는 한달 동안 구인 노력을 했는데도 인력을 구하지 못한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현대판 노예제’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보완하고, 업체에 안정된 외국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지난 8월17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야 할 사업주들의 반응은 뜨악하기만 하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4년 이상 국내에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을 모두 내보내겠다며 단속을 벌이는 사이, 한국말이 통하고 일 잘하던 불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덕분에 괴로운 건 영세업체 사장들이다. 현장에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가공업체인 ㅎ정공은 한때 10여명의 직원이 쉼없이 일했지만, 몇주 전부터는 온 가족이 매달리는 ‘가내공업’이 되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부인이 공장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기계에서 찍혀나온 냄비뚜껑의 먼지를 털어내고, 고등학생 아들은 방학 내내 공장에서 텔레비전 부품 상자를 날라야 했다. ㅈ사장 본인도 모자란 일손을 메우느라 공장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일할 사람 없어져서 사업주도 뜨악

지난해 고용허가제 법안이 통과되고 단속이 본격화되자, ㅈ사장은 “소심한 탓에” 10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내보냈다. 처벌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힘들게 버텨오던 일 잘하는 베트남 청년 둘은 얼마 전부터 단속이 심해지자 끝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국인을 채용하고 싶어도 일주일 걸러 12시간의 밤근무를 견뎌내야 하는 근무조건 탓에 마땅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구인신청을 하면 대부분 45살이 넘은 분들이 와요. 일을 시작해도 1주일 지나면 체력이 달려 스스로 그만두시더군요.”

여전히 4명 몫의 일손이 모자라는 터라 우선 고용안정센터에 내국인 구인신청을 해두었다. 한달 동안 내국인 구인 노력을 했다고 증명을 해야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정받는다고 해도 서투른 한국어와 일솜씨가 걱정스럽고, 무엇보다 언제 ㅎ정공의 차례가 될지 미지수다. “우리 같은 영세업체들은 일손 부족으로 납품 기일을 못 맞추면 바로 ‘끝’이에요. 고용허가제는 공무원들이 현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르고 책상머리에서 끄적거린 법이에요.” ㅈ사장은 몇년 전 끊었던 담배를 며칠 전부터 다시 입에 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바로 옆 공장인 ㅅ산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ㅅ산업은 약간의 ‘모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주간조에는 한국인이나 합법화된 노동자들이,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야간조에는 불법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가 기계 앞을 지킨다. 얼마 전 정부가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를 단속한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가뜩이나 힘든 사정에 기계까지 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곳곳에서 “단속이 떴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콩당거린다. 이곳의 홍아무개 사장은 “일이 힘든 화학업체나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업체 같은 경우에는 내국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불법 체류자를 싹 잡아들이면 여기 시화공단의 3분의 2가 기계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처럼 불법 체류자에 대한 사업주들의 ‘수요’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공모’하는 태세를 보이자, 당국의 ‘불법 체류자 사냥’은 점점 거칠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불법 체류자를 모두 본국에 보내버리고 ‘깨끗한’ 상태에서 고용허가제를 시작하려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애가 탄 정부가 대대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을 시작한 것이다. 욕심이 앞서자, 폭력에 법까지 어기는 무리한 단속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합법 체류자에게도 구타… 병원행 잇달아

지난 8월19일 새벽, 공장 기숙사에서 혼자 자고 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 유쭐(36·가명)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단속반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잠겨진 대문을 넘어 들어온 단속반원들은 유쭐을 각목으로 때리고 발로 짓이기며 “불법 체류자들이 어디 있는지를 대라”며 윽박질렀다. 연락을 받고 뛰어온 공장장 박아무개씨가 “이건 무단 가택침입이다” “이 사람은 합법 체류자인데 왜 그러냐”며 항의했지만, “불법 체류자 단속할 때는 상관없다”는 퉁명스러운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들은 조서를 꾸미겠다며 유쭐을 승합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불법 체류자 친구 이름을 대라”며 다시 폭행했다. 유쭐은 “아무 이름이나 말해주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며 “외국인등록증을 보여주고 당신들 누구냐고 항의했지만, ‘우린 너희들 다 추방할 수 있어’라며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8월11일 인천 남동공단에서는 단속 끝에 2명의 이주노동자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불법 체류자인 ㅇ(27)이 일하는 공장 기숙사를 단속반이 덮쳤고, 마침 그 방에 모여 쉬고 있던 동료들을 모두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ㅇ과 동료 ㅈ(50)은 3층 기숙사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몸이 부서지는 고통에 숨도 쉬지 못하자, 단속반원들은 이들을 그대로 방치한 채 나머지 직원들을 모두 연행해갔다.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병원을 찾았고 현재는 이주노동자 단체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병원에 통원치료를 받으러 가는 일은 또 하나의 모험이 되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김재근 사무국장은 “단속 과정에서 부상당한 이주노동자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센터에서 보호하는 불법 체류자들도 대부분 두통과 마비 등 신경성 질환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근무시간에 공장에 다짜고짜 들어가 합법·불법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잡아들였다가 선별적으로 풀어주거나, 야밤을 틈타 공장 기숙사 담을 넘어 이주노동자를 폭행하는 경우, 또 길거리에 승합차를 세워놓고 신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조건 차에 태운 뒤 등록증을 확인해 선별적으로 내보내는 경우 모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합법적인 체류 허가를 받은 이주노동자라 해도 단속 당시 등록증이 없으면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합동단속 기간 중에 잡혔던 1483명 가운데 190명이 풀려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246명에 대해서는 체류심사 중이라고 밝혀 억울한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는 “공장주의 허락도 없이 담을 넘어 들어간 것은 형법상 현주건조물 침입, 체류 자격이 있는데도 강제로 구인하고 수갑을 채우는 행위는 불법 체포, 감금에 해당된다”며 “불법 체류자를 단속한다는 명목 아래 공무원들이 오히려 불법을 자행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불법 체류자 합법화하는 과도기가 필요”

정부의 ‘체면 불구한’ 노력에도 불법 체류자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한 고용주들이 계속적으로 이들을 고용하고, 재입국 보장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출국을 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업장 이동제한 등 고용허가제의 독소 조항도 불법 체류자를 제도적으로 양산하는 상황이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불법 체류자 문제의 해결 없이는 고용허가제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전면 합법화하는 과도기적 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누더기에 독소 조항까지 안고 있는 고용허가제로 괴로운 사람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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