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받는 미군기지에 대한 정부의 태도… 주둔지 매각 입장 확고한 국방부에만 맡겨서야
▣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반환받는 미군기지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외국 군대가 주둔했던 땅이 우리에게 돌려진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기쁜 일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반환 부지에 대한 활용방안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의 인식 차이가 상당한 수준을 넘어 극과 극인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국방부를 비롯한 중앙정부는 반환받는 미군기지 터를 매각하여 이 돈으로 이전하는 미군기지의 부지와 시설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자체는 마땅히 시민의 공간으로 되돌려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면 공원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자체의 입장은 지자체의 장이나 지방행정기관의 입장 이전에 시민의 입장이 바탕이 되고 있다. 향후 문제의 해결과 실마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중앙과 지방의 갈등을 넘어 정권의 지지기반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반환이 새로운 ‘희망의 출발’이 아닌, ‘갈등의 출발’이 되고 있다.
“아직 결정된 바 없다”로 일관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갈등이 현상화되는 제1라운드는 용산기지다. 2005년도 예산을 짜야 하고, 국정 감사가 진행될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립이 예고될 전망이다. 서울시 뒤에는 “당연히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국민 일반의 여론이 뒷받침되고 있어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지자체들도 용산기지가 어떻게 정리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용산기지는 타 지자체의 입장에서 당연히 선례가 되고, 이것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나머지 반환기지에도 기준과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형평성의 차원에서 어떤 기지는 매각하여 부동산 시장에 내놓아 개발하고, 또 다른 기지는 공원 같은 공공시설로 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용산기지를 비롯해 부산의 캠프 하야리야, 춘천의 캠프 페이지, 원주의 캠프 롱 등을 비롯해 동두천, 의정부, 파주 등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의해 조기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해당 지역은 정부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서울, 부산, 경기도 등은 중앙정부의 대응에 ‘불신 반, 주목 반’의 혼란한 시선을 갖고 있다. 이런 시각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방부의 책임이 컸다. 정부는 반환기지의 협상을 비롯하여 활용 방안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지자체와 협의하거나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말로는 정권 초기부터 지방분권이니 균등발전을 주장했지만 지역에서 가장 민감하고 파장이 큰 현안에 대해서는 ‘배제와 외면’으로 일관한 것이다.
현재 미군기지와 관련된 현안을 담당하는 정부의 조직을 보자. 청와대와 NSC, 국무총리실(주한미군대책기획단), 국방부, 외교통상부 등이 주축이고 여기에 환경과 관련한 이슈가 생길 경우 환경부가 결합되는 수준이며 지역별로 발생하는 현안에는 지자체도 가세한다.
청와대와 NSC는 미군기지와 관련된 현안의 최종적인 정책 결정과 조율을 담당하는 곳으로, 실질적인 결정력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NSC와 청와대의 관련 수석실 역시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서 보여지는 인식이나 능력은 과거 정권과 차별성이 없다. 용산기지의 반환에서 보이는 모습은 어떤 변명을 해도 피하기 어려운 이중성과 음모적인 정책 대응력이다. 한쪽에서는 과밀과 집중의 해소를 위해 신행정수도 이전에 정책의 사활을 걸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대규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NSC와 청와대의 관련 수석실 관계자들은 곳곳에서 이런 흐름이 ‘노출’되거나 ‘적발’되는데도 공식적인 답변은 항상 “아직 결정된 바 없다”로 일관하고 있다. 그 다음, 국방부는 정부 부처 중에서 미군기지와 관련된 실무와 함께 정책의 조율과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부처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국익이나 국민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각종 미군기지의 환경 문제와 범죄에 대한 대응은 미적지근했으며, 최근 용산기지 반환과 연합토지관리계획 협상에서도 특유의 미국에 ‘숙이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논의 단계부터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
총리실 산하의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은 이전과 재비치를 비롯하여 각종 미군 현안에 대해 정부 부처간의 원활한 대응을 위해서 만든 조직이지만, 실제론 정보도 빈약하고 조율 능력도 의심스럽다. 용산기지만 봐도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개발을 주문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내주는 곳이 이곳이다. 마지막으로 외교부. 미국과 벌어지는 주요 협상과 협정의 주무부서다. 하지만 스스로의 태생적 한계와 역사가 친미적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중심을 못 잡고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 관계의 핵심은 주한미군 문제다. 미국과의 협상이나 협약에서 당연히 주장해야 할 법적인 문제까지 ‘어쩔 수 없는 본래 그런 것’으로 치부해왔다. 50년 이상 지속돼온 일방적인 안보 논리에 의해 정부나 국민 모두 그렇게 길들여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반환 미군기지의 앞날이 이처럼 어수선한 이유는, 논의 출발 단계부터 활용 뒤 계획까지 국민들에게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90년대 초반 용산기지를 두고 한-미간에 기본적인 합의를 보고 나서도 우리 정부는 이전 비용을 우리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대전제도 10년 이상이나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가령 미국에선 켄터키의 촌로도 펜타곤에 정식 요청만 하면 알 수 있는 기지 규모 같은 것도 우리 국민에겐 차단된 정보였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곳은 국방부다. 현재 미군기지와 관련된 협상과 실무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관련 부처에 미군기지에 관한 문의를 해도 항상 “우리는 잘 모른다. 국방부에 문의해봐라”라는 답이 돌아온다. 미군기지에서 기름이 유출돼 환경부에 문의를 해도 그렇고, 용산이전 협상에 대해 외교부에 문의해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은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미군기지와 관련한 대응과 대책의 실무적 중심은 국방부였다. 그런데 문제는 국방부의 능력 밖인 영역까지도 ‘미군이니까 국방부로’라는 협소하고 일면적인 차원으로 접근했던 정책의 난맥에 있다.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미군기지는 군사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국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군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보게 되지만 지역이나 도시의 공간으로 보면 환경적 가치를 비롯해 토지의 경제적 가치 등 다양한 측면이 담겨 있다. 안보나 작전수행을 넘어서, 반환기지의 다양한 잠재력을 파악하고 접근하는 데 국방부는 명확한 한계를 지니는 것이다.
반환과 이전에 관련된 다양한 실무를 국방부에게만 맡겨서는 곤란하다. 반환 문제에 대해서 국방부는 “건국 이래 모든 군기지의 이전은 기존 주둔지를 매각하여 그 대금으로 이전하는 것”이 확고한 기본 입장이다. 용산기지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국방부의 모든 공식·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확인해봐도 일관된 답이다. 국방부는 한-미 군사동맹에 입각하여 주한미군의 원활한 주둔과 작전 수행에만 관심과 능력을 쏟고 있다. 반환기지의 대책과 관련하여 국방부를 뛰어넘는 실질적인 정책과 해법이 절실하다.
이제라도 내실 있는 협의체를
비록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전하는 미군기지의 재원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반환기지의 해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작업을 즉시 시작해야 한다. 국민적 설득이 어려워 계속 숨기거나 쉬쉬하다가 마지막에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나오면, 그때 가서 정부를 믿어주고 따라줄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와의 갈등이 현실화되고 있는 반환기지의 활용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중앙정부와 자자체의 내실 있는 협의체 혹은 반환기지활용문제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도 참여시켜야 한다. 또한 이 기구가 들러리가 아닌 실질적인 활용계획을 마련하는 주체가 되도록 중앙정부는 성실하게 추진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반환기지에 관한 미국과의 이전협상 전반에 관한 정보를 소상히 공개하고, 향후 활용계획에 정부의 구체적인 입장과 내용을 밝히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재 꼬여가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미국과의 협상은 정부가 하되 반환기지의 활용은 국민적 지혜를 모으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고 정부의 고민도 덜어줄 수 있다. 정부는 환골탈태의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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