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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이순신의 엠바고를 기억하라

등록 2004-06-16 00:00 수정 2020-05-03 04:2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보수언론들은 공중파 방송을 ‘빨간색 군만두’ 취급하는 듯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얼마 전 발표한 ‘회수·폐기 대상 만두제품’ 리스트에는 정말로 그런 별난 이름이 하나 있었다. 단무지 쪼가리로 만든 ‘빨간색 군만두’… 좌경 쓰레기 만두…, 그러니까 ‘이념이 의심스러운 불량식품’ 같은 불량방송이라는 비난이다. 왜 그럴까?
방송위원회가 ‘한국언론학회’에 시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방송사들의 ‘탄핵방송’ 보도가 대단히 불공정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산수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가 한개면 탄핵 찬성도 한개, 촛불시위가 한개면 꼴통시위도 한개, 앵커가 “나쁜놈들”이라는 코멘트 한개 했으면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도 똑같이 한개여야 하는데 그걸 어겼다는 거다. 산수도 빵점일뿐더러, 만두소에 단무지 쪼가리만 넣듯 일방적인 배합으로 뉴스를 만들었다는 말씀이다. 먼저 ‘한국언론학회’는 ‘한국산수학회’로 이름을 바꿔달 것을 제안하면서, 뉴스 앵커를 대신해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날려드리는 바이다. “만두 피(皮) 헌혈 강요하는 소리 좀 작작 하쇼.”


만두업자들에게 깊은 동병상련을 느낀다. 나에게도 만두를 더 이상 만들 수 없었던 아픈 경험이 있다. 설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빚던 손만두.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품질’을 문제 삼아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너는 앞으로 만두 빚지 마!” 만두소를 다져넣은 뒤 최대한 예쁜 모양을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울퉁불퉁 못난이처럼 작품이 나오는데다 끓이면 반드시 ‘만두부인 속터지는’ 참혹한 결과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완성된 만두의 숫자를 세는 단순 임무만이 주어졌다. 그 부끄러운 추억을 되새기며 를 펼친 뒤 만두 세듯 헤아려본다. “만두 하나, 만두 둘, 만두 셋, 만두 넷, 만두 다섯….” 하지만 만두업자 옆구리 찌르는 만두 기사만 계속된다. ‘쓰레기 만두’를 까는 ‘기사’가 하나면, 쓰레기는 원래 재활용하는 거라며 만두업자 두둔해주는 ‘흑기사’도 하나씩 등판시켜줘야 하지 않은가. 그랬으면 업자의 투신자살도 없었을 거 아닌가. 이것도 공정성 조사 의뢰해야 할 일이다. 한국산수학회, 아니 ‘한국셈학회’는 반드시 일관성을 지켜 이런 결론을 내려주기 바란다. “는 ‘쓰레기 만두’의 위험성만 편파적으로 펑펑 튀긴 ‘후라이팬 군만두’ 같았다.”(이 제품도 실제 회수·폐기 대상임)


엠바고의 원조는 이순신 장군이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그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 세종로 한가운데에 칼 차고 서 있으니, 서울은 엠바고의 대표 도시다. 그렇다면 경찰청 기자실의 ‘쓰레기 만두’ 엠바고 논쟁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알리지 말랬잖아!
그래도 네티즌들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단 작은 일부터 꾸며볼 것을 권한다. 사실 우리 생활 속에 자잘한 엠바고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건 너한테만 특별히 알려주는 건데, 당분간 절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면 안 돼. 알았지? 맹세!” 이런 언약 속에 은밀한 새끼손가락들이 오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순진한 엠바고가 곧이곧대로 지켜진다고 생각하면 바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부정직과 음모, 뒷다마와 배신의 씨앗을 심는 엠바고. 네티즌들이여, ‘촌지근절’ 운동처럼 범국민 캠페인을 벌이시라. 엠바고, 주지도 받지도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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