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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노회찬과 귀신들의 전설

등록 2004-04-22 00:00 수정 2020-05-03 04:2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가슴 아픈 누나를 놀리자는 속셈인가. “이번 총선은 누나당의 승리로 확정.” 총선 다음날 아침 날아든 이메일 제목이다. 혹시나 ‘누나당’이 막판에 뒤집기라도 한 줄 알았다. 열어보니 ‘박근혜 누나당’이나 ‘추미애 누나당’을 지칭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느 이름 모를 누나가 벗은 몸으로 야릇하게 인상 쓰는, 그렇고 그런 스팸메일이었다. ‘받은 편지함’을 엉망으로 만들지언정, 웃기는 제목의 스팸메일은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이런 것들도 있었다. “꼬출 든 남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그들도 모두 XXX는 좋아한다.” 무삭제 원본? 무작정 삭제!
사실 ‘누나당’은 제3당이다. 당신은 어릴 적 ‘엄마당원’이었는가 ‘아빠당원’이었는가. 날이면 날마다 수시로 반복되던 여론조사 응답 강요는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은지 꼭 입장을 밝혀야 하는가 말이다. 용돈살포와 뽀뽀가 동반되는 회유 속에서, 아이들은 기회주의와 철새의 습성을 익힌다. 이 땅의 엄마 아빠 여러분, 제발 자식들에게 경쟁적으로 지지를 확인하지 말지어다.


‘공포의 삼겹살’이 국회에 입성한다. 그는 누나가 아닌 오빠다. 50년 넘은 불판을 갈아야 삼겹살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뉴노빠’의 주인공, 노회찬 당선자. 그는 민주당과 자민련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민노당 지지율을 ‘삼겹’ 늘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페셜 메뉴로 치면 다른 정당들의 표를 깎았다는 점에서 ‘대패 삼겹살’이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계속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솥뚜껑 삼겹살’이다.
그는 삼겹살을 우아하게 즐기기 원하는 서민들에게 자신감도 심어주었다. 고깃집에서 불판을 자주 갈아달라고 하다보면, 가끔 귀찮은 내색을 하는 주인들을 만난다. 혹시 그들이 수구세력? 10분만 넘어도 새까맣게 타는데, 눈치 준다고 머뭇거릴 것인가. 그들에게 전설을 들려주자. ‘바람의 전설’이 아닌 ‘발암의 전설’을! 타버린 고기 먹다가 암에 걸려 불쌍하게 죽은 귀신들의 전설을!


‘자민련’은 ‘자민투’보다도 못하다. 자민투는 자민련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성향은 180도 다른 1980년대 학생운동 투쟁조직. 자민련은 이번 총선에서 겨우 4명이 살아남았지만, 자민투의 이념세례를 받았던 학생운동가 출신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들이 방송사로부터 왕따당할 거라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 왜? PD들이 죽도록 싫어하니까! 왜? NL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코를 “팽”(烹) 풀고 있을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불쌍하다. 그는 왜 3당합당으로 올인하지 않았을까. 1990년에 톡톡히 재미를 봤던 그 카드를 다시 꺼냈다면, 분명히 10선에 성공했을 것이다. 코드가 딱 맞는 두 정당. 늙은 서러움을 함께 다독여나갈 노년권익보호당의 서상록 총재, ‘박정희 선배’에 관해 쿵작이 통하는 민주공화당의 허경영 총재. 그들의 정당득표율은 각각 0.2%와 0.1%였다. 자민련의 2.8%와 합치면 무려 3.1%다. ‘유신잔당’에 이은 ‘3김잔당’으로서 고군분투한 JP여, 2008년 총선을 위해 하루빨리 합당하라. 그게 합당하다! ‘삼당’ 대표는 즉각 모여 서로를 ‘상담’하라. 아, 와신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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