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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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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졸자 자살률, 대졸자의 15배

[생명 OTL] 빈곤과 죽음의 이중나선 /

자살-빈곤 상관관계…

20대 초졸자는 대졸자의 7.4배, 농민은 고위공직자의 20배 등

가난할수록 가뭇없이 사라지는 생명들
등록 2011-01-19 17:40 수정 2020-05-03 04:26

“OO야, OO야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이럴 수밖에 없는 걸 너희들은 알아주고 아빠가 죽더라도 너희 옆에 항상 너희하고 있는 거야.”
2001년 3월10일 35살의 한 남성이 높은 곳에서 몸을 던졌다. 그는 두 자녀에게 유서를 남겼다. 아내가 1999년에 사망한 뒤, 그는 자녀를 친척집에 한 명씩 맡기고 오락실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가 자살한 날은 딸의 생일이었다. 경찰 수사기록에는 그가 딸의 생일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처지를 비관했다고 적혀 있다.
“집 전기, 가스도 끊겼구, 이사도 가야 대구 돈은 없구 사랑하는 OO(아내 이름)이가 무지 힘들겠다…
난 집에 조금만 돈이 있었어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갔을 거야.”
30살 남성은 2005년 3월18일 목을 맸다. 빚을 내서 사들인 식당에 전기와 가스가 모두 끊겨서, 장사를 더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가게 관리비와 시설비를 내지 못했고, 전기요금과 도시가스비도 오랫동안 내지 못했다. 
자살, 한국인의 세 번째 사망 원인

2008년 10월 강신호 전 전경련 회장,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등 원로 인사들이 ‘자살 없는 건강한 사회 만들기’ 준비모임을 결성한 뒤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의 호소에도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은 2008년 26.0명에서 이듬해 31.0명으로 대폭 늘었다.한겨레 신소영

2008년 10월 강신호 전 전경련 회장,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등 원로 인사들이 ‘자살 없는 건강한 사회 만들기’ 준비모임을 결성한 뒤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의 호소에도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은 2008년 26.0명에서 이듬해 31.0명으로 대폭 늘었다.한겨레 신소영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0년에 낸 책 에 소개된 자살 사망자들의 이야기다. 유서를 남긴 이들의 등을 떠밀거나 목을 조른 것은 모두 ‘돈’이었다. 암과 심뇌혈관계 질환에 이어 한국인의 사망 원인 세 번째에 속하는 자살에도 빈곤의 그림자는 어른거렸다.

자살과 빈곤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2009년에 만든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한 건강증진 전략 및 사업개발’ 보고서를 펼쳐봤다. 보고서는 1998~2007년 네 차례에 걸쳐 정부가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재분석했다. 전체 2만35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분석 내용을 보면, 소득 하위 25%에 속하는 남자 가운데 설문 시점부터 과거 1년 사이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3.0%였다. 상위 25% 상류층의 4.0%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여성은 두 계층 사이에서 최하층(25.0%)의 수치가 최상층(11.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소득이 내려갈수록 ‘자살 충동’은 점점 크게 부풀어올랐다. 모든 집단은 서로 다른 연령대 분포를 표준화한 뒤 통계를 뽑았다.

학력 기준으로 보면, 남성은 고학력자 가운데서 자살을 떠올리는 빈도가 오히려 높았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남성 가운데 8.2%가 1년 사이에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지만, 중졸 이하 학력 남성 가운데 자살 충동을 느낀 비율은 6.2%였다. 여성의 자살 충동은 학력이 떨어질수록 뚜렷하게 늘었다. 중졸 이하 여성은 4명 중 1명꼴(28.5%)로 자살을 떠올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대졸 이상 여성은 자살에 끌린 비율(11.3%)이 낮았다. 남성은 학력이 높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자살을 자주 생각했고, 여성의 자살 충동은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강했다.

그렇다면 실제 자살 사망률은 어떻게 나타날까? 2005년에 나온 ‘2000 우리나라 성인 자살자의 인구 사회적 특성’ 논문(김창엽 서울대 교수·보건학)을 펼쳤다. 논문은 연령대별로 무학부터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 인구 사이의 자살률을 비교했다. 모든 세대를 통틀어 30대에서 학력별 자살률 격차가 가장 컸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남·여 인구에서는 한 해 10만 명당 7.9명이 스스로 몸을 끊었지만, 초등학교까지만 학교를 다닌 사람 가운데서는 10만 명당 121.4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두 집단의 자살 빈도는 무려 15.3배 차이가 났다. 20대의 젊은 인구 집단에서도 자살 사망률은 대졸 이상(10만 명당 11.5명)과 초등학교 졸업 학력자(85.4명) 사이에 7.4배의 격차가 벌어졌다. 학력에 따른 자살 빈도 격차가 가장 적은 70대 인구에서도 대졸자(28.4명)와 무학자(80.0명)는 2.8배의 차이가 있었다. 배움의 기회가 적을수록 생명은 더 자주 사라졌다.

 

30%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

자살은 직업도 차별했다. 논문을 보면, 남성의 경우 고위공직자나 관리자들의 표준화 사망률은 10만 명당 2.3명이었지만, 농업인의 사망률은 10만 명당 56.5명으로 20배 이상 차이가 났다. 표준화 사망률이란 직업별로 다른 연령 분포 통계를 일정하게 가공해 표준화한 뒤 서로 사망 빈도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무직(35.7명), 단순노무직(30.9명)의 사망 빈도가 높았고, 전문직(3.9명)의 빈도가 낮았다. 여성은 전문직(2.3명)의 사망 빈도가 가장 낮았고, 농업인(15.6명)과 무직(12.5명) 인구가 자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처지까지 내몰렸다.

자살은 계층 간 사망률 격차를 벌리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정최경희 이화여대 교수(예방의학)는 2008년에 내놓은 논문에서 세대별 사망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한 뒤, 25~44살 여성 가운데 학력별 사망률 격차가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자살을 지목했다.

논문에 따르면,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을 가진 25~44살 여성이 대졸 이상 학력의 여성보다 자살할 빈도가 5.8배 높았는데, 자살이 사망률 격차를 벌리는 원인 중 11.4%를 차지했다. 심뇌혈관계 질환(7.0%), 교통사고(5.7%) 등도 계층 간 사망률 격차를 벌렸다. 25~44살 남성 집단에서는 학력별로 사망률이 9.5배 차이가 났는데, 자살(11.9%)은 간질환(16.2%)에 이어 사망률 격차를 벌린 두 번째로 큰 원인이었다.

목숨을 끊은 자와 주변인이 밝히는 자살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앞서 소개한 은 이 질문에 주목할 만한 대답을 제시했다. 저자인 박형민 박사는 서울과 수도권, 비수도권 3개 경찰서 관할지역에서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일어난 1321건의 자살 사건 기록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사망자들이 남긴 405개의 유서도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전체 1321명 중 448명(33.9%)은 가족·애정 문제가 있었고, 401명(30.4%)은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 400명(30.3%)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질병 등 신체적 문제(268명·20.2%)나 사회관계 문제(74명·5.6%)도 종종 나타났다. 박 박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자살 사망자 400명의 수사기록과 유서를 다시 분석했다. 가장 주요하게 등장한 경제적 어려움을 종류별로 나눠보니, 사업 실패(105건·26.3%)가 가장 비중이 높았다. 그 밖에 빚(91건·22.8%), 실직(45건·11.3%), 생활고(45건·11.3%) 등이 자살한 이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가난과 자살의 상관관계에 눈감은 정부

정부는 2000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자살예방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08년에 나온 대책을 보면, 자살의 원인과 현황을 분석한 뒤 2013년까지 10만 명당 자살률을 20명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86쪽에 걸친 자료 안에는 소득 및 학력별 자살률 격차에 대한 분석이나 정책은 전혀 없었다. 자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버려졌다. 그사이 10만 명당 자살률은 2008년 26.0명에서 2009년 31.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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