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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으냐”의 완승!

등록 2007-11-09 00:00 수정 2020-05-03 04:25

엑스트라감은 아닌 ‘훤칠남’ 최성진 기자, 의 화공이 되다… 주 역할이 ‘대기’인 엑스트라는 말년차 예비군 같았네

▣ 글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여자들은 왼쪽, 남자들은 오른쪽에 좀 서보란 말이야. 왼쪽 오른쪽도 몰라.”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 약속 시각인 새벽 3시40분을 넘긴 것도 아닌데 공연히 주눅이 들었다. 뭘 묻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슬그머니 맨 뒷줄에 따라붙었다. 양옆의 남자들에게서 소주 냄새가 확 풍겼다. 책임자는 까딱까딱 고갯짓을 하며 머릿수를 셌다.

“그럼 대본은 언제 줘요?”

“이제부터 버스에 탈 건데, 우왕좌왕하지 말고 왼쪽부터 3열로 맞춰서 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마당에 모인 130여 명의 남녀가 일제히 버스로 몰려갔다. 3열이란 말이 3초 만에 무색해졌다. 이들은 문화방송 드라마 의 ‘엑스트라’, 즉 보조출연자들이다. 나 역시 오늘은 이들 엑스트라 가운데 한 명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린 버스는 비포장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이내 멈춰섰다. 목적지인 경기도 용인의 문화방송 야외 세트장이다. 창밖은 아직 컴컴했다. 여전히 새벽인 것이다. 몇몇은 분주했고 대부분은 태연히 계속 잠을 잤다.

“여기 오신 분들의 배역은 다 정해져 있나요?”

종이 꾸러미를 손에 쥔 채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걸던 사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내려서 분장하고 다 정해줄 거야. 가만있어.” “그럼 대본은 언제 줘요.” 사내의 서슬이 무서웠지만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내는 별 이상한 친구를 다 본다는 듯 그제야 힐끔 쳐다봤다. “처음 왔어?” “아, 네. 전….” “대본 같은 거 없어. ‘와’ 하고 웃으라고 하면 ‘와’ 하고, 그냥 눈치껏 잘 따라다녀.” “….”

도대체 차근히 설명해주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배역을 나눠줄 때가 돼서야 비척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열심히 종이를 들여다보던 사내가 오늘 필요한 배역을 불렀다. “가마꾼 열여섯, 별감 넷, 여자들은 상궁, 나인. 서리하고 무관이 열. 그리고 내시가….” 또 다른 사내는 사람들 무리에서 배역에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찍어냈다.

“나는 어제도 가마꾼 했는데 또 가마를 메라고?”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영조대왕의 가마를 멜 가마꾼은 기피대상 1순위인 듯했다. “싫으면 집에 갈래?” “에이 씨.” 보조출연자가 주어지는 배역에 토를 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곧바로 집에 가는 수가 생긴다.

‘가문의 망신이다. 내시만 걸리지 말아라.’ 마음속으로 빌 수밖에 없었으므로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거기 키 큰 친구, 화공.” 가마꾼이나 내시를 피했다. 일단 성공!

의상을 갖춰 입고 분장을 하는 것은 모두 보조출연자 자신의 몫이다.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여러 사람이 매달려 머리를 만져주거나 분을 두드려주는 일, 절대 없다. 기껏해야 수염을 붙이는 작업 정도를 몇 명의 전문 인력이 도와줄 뿐이다. 물론 수염 외에 특별한 분장을 할 일도 없다. 어디까지나 보조출연자니까.

벗지 않으려는 자와 벗기려는 자

도화서 화공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극중에서 도화서는 꽤 중요한 공간이다. 드라마의 감초 구실을 하는 이천(지상렬)의 역할이 바로 도화서 화공일 뿐만 아니라, 송연(한지민) 역시 정조의 후궁이 되기 전까지는 도화서에서 화공의 먹을 갈아주는 다모였다.

배역에 맞는 의상을 나눠주자 이번에는 옷을 껴입는 문제를 놓고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보조출연자들은 하나라도 더 껴입으려고 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산속의 새벽 공기는 이미 겨울을 무색하게 했다. 그런데 목이 올라온 상의를 입은 채 극중 의상을 착용하면 움직임에 따라 ‘옥에 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벗지 않으려는 사람과 벗기려는 쪽의 치열한 눈치 싸움. 승부는 역시 “집에 가고 싶으냐”란 말로 정리됐다. 군용 방한 내피, 일명 ‘깔깔이’를 입은 사람이 유난히 많았던 이유도 그제야 설명이 됐다. 목이 깊게 파인 깔깔이는 겨울철 야외촬영의 필수품으로 보였다.

난감했다. 홑겹 화공 옷만 입고 긴긴 산속의 하루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살길은 오로지 눈치와 속도뿐이다. 반장 눈을 피해 재빠르게 상의와 조끼를 입고 허리띠를 맸다. 상의를 최대한 추어올린 뒤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손목에는 화공답게 토시도 찼다. 여기에 바지와 버선을 입고 신고, 발목에는 ‘행전’(바지나 고의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래 매는 물건)까지 두르니 화공으로의 변신 끝. 다 좋은데 얄궂게 생긴 모자가 거슬린다. 호위 무사의 의상에 눈이 간다. 그러나 언감생심, 집에 가긴 싫었다.

보조출연자의 주된 역할은 대기다. 기다리다가 부르면 달려가야 하고, 달려갔다가도 감독의 마음이 바뀌면 돌아와야 한다. 정해진 촬영 스케줄이 있긴 하지만 스케줄표가 감독의 ‘필’보다 우선하는 법은 없다.

인원 수도 상관없다. 아무리 많은 보조출연자가 준비를 마쳤다고 해도 주연배우 한 명이 안 오면 기다려야 하고, 감독의 기분이 바뀌면 또 기다려야 한다. 앞 장면의 촬영이 늦어져도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 하여간 보조출연자는, 기다려야 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의상을 모두 갖춘 보조출연자들은 A팀과 B팀으로 나뉘었다. A팀은 궁궐 장면을 찍기 위해 세트장으로 향했고, 내가 속한 B팀은 영조대왕과 세자가 함께 행차하는 장면 촬영을 위해 산을 올랐다. 그런데 막상 산 중턱에 도착하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기다림이었다. 정후겸이 사수들과 만나 모의하는 장면으로 촬영 순서가 바뀐 것이다.

할 일이 없어진 보조출연자 몇 명이 하나 마나 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럴 거면 그냥 쉬게 놔두지 뭣하러 여기까지 올려보내.” 멀리서 사수의 화승총 소리가 들렸다. 놀란 꿩 한 마리가 새소리를 내며 푸른 하늘을 길게 갈랐다.

오전 내내 광을 팔다

통제되지 않는 보조출연자들은 ‘말년차 예비군’과 다를 바 없었다. 옷에 흙이 묻든 말든 벌러덩 누워서 자연과 교감하는 무사가 있는가 하면, 담배를 피우며 사색에 빠진 가마꾼도 눈에 띄었다. 한쪽에서는 서리와 백성 몇 명이 동전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상궁과 나인들은 옹기종기 모여 열심히 잡담을 나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현장 책임자의 휴대전화도 바빠졌다. 어느새 그도 붉은색 별감 복장을 갈아입고 있었다. 결과가 나왔다. “촬영이 좀 늦어질 것 같은데 버스에 가 있어도 좋아. 하지만 부르면 빨리빨리 와야 해.” 보조출연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째, 오늘 광 파는 날인갑네.” 여기저기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광 판다’는 말은 할 일 없이 편하게 쉬는 것을 뜻한다.

내려오는 길에 한국예술의 안승각 이사와 맞닥뜨렸다. 한국예술은 보조출연자 공급 업체 가운데 시장 규모 면에서 단연 1위다. 안 이사는 제작사와 협의해 보조출연자의 공급 여부나 규모를 결정한다. 대사를 꼭 얻어내야 한다는 사회팀장 선배의 당부가 떠올랐다. “이사님, 저 오전 내내 광팔았는데요, 뭐 대사 있는 역할 없어요?” “거기가 중요해. 이따가 계속 찍을 거야.” 안 이사는 귀찮다는 듯 사라져버렸다.

사극 촬영을 위해 야외 세트장에 모인 보조출연자들은 먹을 것에 집착한다. 돈이 없거나 못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세트장 어디를 둘러봐도 음식을 구할 곳이 없다. 식당도 없고, 편의점도 없다.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다. 오로지 숲과 산뿐이다.

배가 고팠다. 새벽 몇 시에 집을 떠나든, 아침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는 이 바닥의 법칙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출발하는 버스에서 우연히 봤던 옆 사람의 가방 속이 떠올랐다. 도시락이며 딸기우유, 초콜릿바 등이 그득했다. ‘뭐냐, 이 아저씨는 어디 소풍 가시나.’ 그때만 해도 속으로 피식 비웃었더랬다. 경솔한 행동이었다. 역시 경험이 무기다.

낮 12시가 넘자 밥차가 도착했다. “밥차 왔다”는 소리가 복음처럼 들렸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보조출연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줄을 섰다. 현장 반장을 맡고 있는 정호연(50)씨는 “오늘은 생일 맞은 날”이라고 말했다. 평소 촬영을 하다 보면 오후 3시가 넘도록 식사를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제때 식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이다.

이왕이면 왕세자 뒤에 서고 싶었지만…

“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배식을 하는 과정에 사소한 말다툼이 발생했다. 밥을 더 달라고 요구하던 최아무개(29)씨가 반장 정씨에게 핀잔을 들은 것이다. 백성 역을 맡은 최씨는 오전에 도착하자마자 상투를 잃어버린 인물이다. 지급받은 의상이나 소품 관리는 보조출연자들이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그때부터 ‘미운털’이 박혀 있던 최씨는 수북히 밥을 퍼줬는데도 한사코 더 달라고 떼를 쓰다가 ‘한소리’ 듣고 말았다. “에이 씨, 사람이 나이가 다가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그는 낯선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보조출연자 가운데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나름대로 연기에 대한 열정을 품고 나온 사람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5만원 남짓한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나선 경우다. 최씨는 일본의 가라오케에서 3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최근 귀국했다. 보조출연자로 나선 이유는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란다. 그는 며칠 전 또다른 사극 촬영장에서 가수 겸 탤런트 심은진과 악수했다는 사실을 자랑했다.

“보조출연자들 스스로가 이 일에 애정을 가져야 하는데 잠시 지나치는 일쯤으로 여기니 방송사에서도 우리를 소품 취급하는 거야, 쯧쯧….” 군관 역을 맡은 이두희(61)씨가 푸념했다.

“자자, 오전 내내 광 팔았으니까 한 번 할 때 제대로 해줘야 해.” 반장 최씨가 촬영 시작을 알렸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주연배우 이서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조 역을 맡은 이순재와 남사초 역의 맹상훈도 나타났다.

촬영분은 가마에 탄 영조와 말을 탄 채 뒤를 따르는 세자 ‘이산’을 수많은 신하들이 수행하는 장면이다. TV 화면에서는 형형색색의 의상을 갖춘 긴 어가 행렬이 꽤 그럴듯한 장면으로 비쳐질 듯했다.

이런 ‘떼씬’(군중신)을, 보조출연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명이 모여 찍다 보면 당연히 NG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김근홍 프로듀서가 둘둘 만 종이로 확성기를 만들어 주의사항을 일렀다. “양옆과 앞뒤 줄을 잘 맞춰주시고요, 특히 거기 뒤에 떠들거나 웃으면 안 됩니다.”

기왕이면 영조나 왕세자 바로 뒤에 서고 싶었지만, 화공의 위치는 행렬의 거의 맨 뒤였다. 감독의 큐 신호가 들어왔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고작 걷는 연기라니….’ 실망감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어쩌랴, 그래도 나의 첫 작품이다. 나름대로 걸음걸이와 팔의 각도, 표정 등에 신경이 쓰인다.

감독은 깐깐했다. 예쁘게 줄 맞춰서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도 김 프로듀서는 마음에 차지 않는지, 연방 “커엇!”을 연발한다. 김 프로듀서가 세자 이서진의 표정을 지적했다. “지금 일이 생겼어, 안 생겼어? 아무 일 안 생겼는데 표정이 그게 뭐야.”

보조출연자들의 군소리가 슬슬 시작됐다. “잘못하면 이러다 오늘 날밤 까겠는데….” “걱정 마라. 어가 행렬인데 설마 밤 장면까지 찍겠냐.” “그러네. 임금이 밤에 행차하면 그거 야반도주 아냐?” 군관 몇 명이 낄낄댔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오가며 똑같은 장면을 찍고 또 찍기를 십수 차례.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저려왔다. 밑창이 얇디얇은 갖신이 원망스러웠다. “저거 가마꾼들은 오늘 밥값 좀 하겠는데.” “모르긴 해도 지금쯤 머리에서 지진 좀 날 거야.” 영조를 태운 거대한 가마는 한눈에 봐도 무겁게 생겼다.

‘필’ 있는 한, 촬영은 계속된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짜증으로 바뀔 때쯤, 감독의 ‘오케이’ 신호가 떨어졌다. 촬영 끝. 해는 이미 산을 넘은 뒤였다. 새벽에 함께 서울을 떠나온 130여 명의 보조출연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감독의 ‘필’이 살아 있는 한, 촬영은 계속된다. 어느새 반장 정씨가 야간 촬영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정씨와 티격태격하며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과 짜증을 동시에 안겨줬던 최씨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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