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유를 마시고 우유팩을 씻고 펴서 따로 말리면 안도감과 성취감이 마음 한쪽에 생겨난다. ‘제대로 재활용되겠지.’ 이 마음은 재활용 실태와 같을까. 한겨레21은 이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해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 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우유팩에 스마트태그 53개를 붙여보기로 했다. 스마트태그는 주변 갤럭시 스마트폰을 통해 위치 신호를 보내는 추적 장치다.
스마트태그마다 출발지를 표시한 뒤 서울 중구와 종로구의 카페에 나눠주고 우유팩 더미와 함께 배출해달라고 부탁했다. 우유팩 더미 53개의 ‘여행’을 따라가기 위한 준비였다. 이 작업에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기사 보기 : 카페에서 배출한 우유팩의 경로…추적기를 붙여봤다)
우유팩을 이렇게까지 추적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유팩과 두유팩 등을 아우르는 종이팩은 재활용 가치가 높은 자원이다. 품질이 좋은 펄프로 만들어져 제대로 회수하면 화장지 등의 원료로 다시 쓸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은 2024년 14.1%에 불과하다. 2013년 35.2%에서 크게 떨어졌다.
추적기를 따라 종이팩의 재활용 경로를 따라갔다. 중구에서는 400여 개 카페가 종이팩을 씻고 말려 별도 봉투에 버리는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깨끗이 분리배출한 종이팩도 재활용되기까지 여러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관문은 수거였다. 밤늦게 수거 현장을 지켜보니 쓰레기를 압착하는 과정에서 봉투가 찢어지기도 했다. 따로 모은 종이팩이 다른 쓰레기와 섞여 오염될 수 있었다. 그나마 중구에서 출발한 종이팩 40개 가운데 21개는 재활용선별장에 도착했다. 따로 모아 버리지 않는 종로구보다 높은 비율로, 분리배출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틈도 있었다. 종이팩 4개는 선별장을 거치지 않고 소각장으로 향했다. 다른 종이팩들은 예상하지 못한 야적장이나 자원업체 등에서 신호를 보냈다.
선별장에 도착했다고 여행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두 번째 관문은 선별이었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폐기물 가운데 사람이 손으로 종이팩을 골라냈다. 취재팀도 선별장을 찾아 스마트태그의 소리를 울려 종이팩이 담긴 포대를 찾아냈다. 제한된 인력과 시설로 모든 종이팩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선별된 종이팩 앞에도 관문이 남아 있었다. 따로 보관하다 일정한 양이 쌓이면 차에 실어 재활용업체로 보내야 했다. 오래 보관하면 곰팡이가 피거나 악취가 나서 폐기되는 일도 있었다. 선별장을 나선 뒤 다른 폐지업체나 자원업체로 향한 추적기도 있었다.
분리배출, 수거, 선별, 보관, 출고. 하나라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종이팩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추적기를 넣은 종이팩 53개 가운데 한 달 안에 재활용업체까지 도착한 사실을 확인한 건 결국 1개였다.(1626호)
그렇다고 어느 한 관문을 지키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데도, 그 사이를 연결하는 과정 곳곳에서 종이팩은 사라지고 있다.
정부는 2026년 하반기에 아파트에서 종이팩을 다른 폐지와 분리해 배출하도록 지침을 바꿀 예정이다. 시민이 종이팩을 씻고 말려 따로 내놓는 순간은 재활용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시민에게 잘 버려달라고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그렇게 버린 종이팩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우유팩 재활용 추적기’는 다큐멘터리 영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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