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3월15일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전주시가 몰래 자른 버드나무의 밑동을 끌어안고 있다. 김양진 기자
곧 있으면 수나무들이 일제히 노랗게 꽃밥을 터트릴 버드나무의 계절이다. 강가를 무대로 살아가는 버드나무는 그 유연한 잎과 가지를 봄바람에 내맡긴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만나고 이별하며 이 풍취에 빠져들었다. 가수 이미자씨는 ‘나무들도 애타는 그리움 봄비가 내리듯이 (…) 흥겨운 팔을 벌린대요’(‘춤추는 버드나무’)라고 노래했다. 전국 으뜸으로 꼽히던 전주천 버드나무숲이 전주시의 생태 파괴 행정으로 학살된 지 1년이 지났다. 2024년 3월15일 한겨레21 현장 취재 당시 베인 밑동을 끌어안고 절규했던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에게 연락했다.
—1년 만입니다. 전북도에서 전주시 감사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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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감사위원회가 전주시를 감사해 2024년 11월 기관경고 조치를 했어요. 조례에 의한 협의 기구인 전주시생태하천협의회와 버드나무를 베지 않기로 합의했음에도 시장 마음대로 파기한 것이 잘못됐다고 결론 난 거죠. 전북환경운동연합도 8개월가량(3~11월) 1인시위 등 활동을 이어갔지만, 무엇보다 많은 시민이 안타까워하고 힘을 모아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전주시도 이제 조금은 조심합니다. 그래도 생각을 바꾼 건 아니에요. 절차는 지키되 전주천에서 하고 싶은 토목공사를, 예를 들면 물놀이장이나 공연시설을 만드는 일을 계속 벌이겠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어요.”
—지금 전주천은 어떤 상태인가요.
“베인 버드나무 밑동에서 맹아가 사방으로 어지럽게 자라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지, 시민들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지금 전주천은 황량합니다. 버드나무도 벴지만 과거 생태하천협의회에서 그냥 두기로 결정했던 수크령이나 물억새랑 강둑의 키 작은 나무들도 산책로를 정비한다는 이유로 모두 없앴어요. 참새부터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새들이 살던 서식처가 사라진 거죠. 그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2024년 이맘때 흰목물떼새(멸종위기 2급)나 저어새(멸종위기 1급)가 전주천을 찾았어요. 강바닥을 긁어내고 버드나무숲을 베어낸 지금은 보기 어려워졌고요. 전주천에 사는 물고기도 급감했어요.”
2024년 5월 전북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준설(강바닥을 파내는 일) 공사가 이뤄진 삼천 마전교 구간에서의 물고기 종류는 2023년 18종에서 1년 뒤 4종으로 급감했다. 당시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자료를 내어 “그나마 남아 있는 어종은 환경 적응력이 높은 종인 피라미나 모래무지 정도다. 하나의 작은 서식지 생태계가 완전하게 붕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타깝습니다. 조기 대선이 예상되고 이에 맞춰 개헌 논의 등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생태·민주 헌법으로의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저희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생물다양성 내지 생명의 가치를 헌법에 폭넓게 담고, 헌법에서 다양한 생명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이 돼야겠죠. 그런데 사실 저희는 누가 단체장이 되더라도 전주천 생태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어요. 시민사회와의 오랜 합의 기간이 있었고, 조례 등 제도까지 탄탄하게 뒷받침했거든요. 전주천이 국가하천으로 승격(2024년 2월 지정)된 것도 거버넌스를 통한 하천 생태복원의 모범사례였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멋대로 나무를 자르고 준설공사를 벌였어요. 법·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그에 상응하는 시민들의 생태적 감수성, 환경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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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주천 버드나무 학살 사태는 과거엔 ‘막개발로 인한 환경 훼손’으로 간단하게 정리하던 사안 같아요. 하지만 이번엔 한겨레21을 비롯해 여러 언론이 버드나무의 생태적 기능이나 역할,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나아가 버드나무 중심의 전주천 공동체에 주목했던 거 같아요. 앞으로도 살아 있는 생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언론들이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생명체의 입장에서 쓴 기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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