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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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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 불어넣는다더니…” 패스트패션 기업 수거함에 넣은 옷도 말레이에서 발견

③ 당신들의 비윤리
H&M “글로벌 모기업 본부가 계약 맺은 업체가 국외 업체”
자라 “국외로 이동한 옷이 매립지로 가는 것은 최대한 방지” 답변
‘기업의 책임과 친환경’ 마케팅 하지만 다른 헌 옷들과 행로 비슷
등록 2024-12-27 22:11 수정 2025-01-01 08:03
수도권에 있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ZARA) 매장 안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에 옷을 넣고 있는 한겨레21 취재팀. 한겨레 조윤상 피디

수도권에 있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ZARA) 매장 안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에 옷을 넣고 있는 한겨레21 취재팀. 한겨레 조윤상 피디


“수거된 물품 중 다수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패스트패션 의류 브랜드 H&M(에이치앤엠)은 2013년부터 매장 내에 헌 옷 수거함을 설치했다. 이 헌 옷 수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친환경을 강조하는 정책이다. 계산대에서 헌 옷을 건네면 된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시 다음 쇼핑에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기도 한다. H&M 쪽은 수거된 의류와 직물 중 약 8%만 폐기된다고 말한다. 나머지는 재사용·재판매·재활용된다. 그뿐만 아니다. 자라(ZARA), 유니클로 등 패스트패션 업체 또한 이런 형태로 의류를 수거한다. 유니클로는 “옷의 새로운 여행”이라며 수거한 옷을 재활용하겠다고 말한다. 자라도 “더는 입지 않는 옷을 넣어주세요. 새로운 주인을 찾아드립니다”라는 긍정적 슬로건을 내건다. 비영리단체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홍보한다.

개발도상국에 ‘옷 쓰레기 산’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패스트패션 기업은 이런 프로젝트들로 옷의 재활용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패스트패션 기업의 수거통에 담긴 헌 옷들은 어디로 향할까.

서울의 한 H&M 매장의 수거함에 추적기를 단 헌 옷을 버렸다. 이 티셔츠는 물류창고와 항구를 거쳐 말레이시아 클랑항으로 이동했다. 사진 구글 위성지도 갈무리.

서울의 한 H&M 매장의 수거함에 추적기를 단 헌 옷을 버렸다. 이 티셔츠는 물류창고와 항구를 거쳐 말레이시아 클랑항으로 이동했다. 사진 구글 위성지도 갈무리.


한겨레21 취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헌 옷에 추적기를 달았다. 그리고 서울 시내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에 설치된 수거통에 넣었다. H&M과 자라에 각각 6벌, 유니클로에 4벌을 실험 대상으로 넣었다. 수거함을 설치하지 않은 다른 브랜드의 경우에는 실험을 할 수 없었다.

개도국 이동, 탄소배출 가능성 커 

2024년 8~9월 중 수거함에 옷을 넣었고, 약 4개월이 흘렀다. 2024년 12월12일 기준, H&M 수거함에 넣은 옷 2벌이 말레이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서울 중구의 H&M 수거함에 2024년 8월16일 투입된 헌 티셔츠의 경우, 4일 만에 경기도 이천의 물류창고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11월 초까지 머물다가, 11월17일께 말레이시아의 클랑항 인근 창고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말레이시아 클랑항은 싱가포르와 인접한 대규모 항구다. 이 항구로 가는 물품들은 말레이시아 안에서 재판매되기도 하지만, 다른 국가로 이동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 클랑항이 ‘환적 항구’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와 인도 등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한겨레21이 만난 수출업체 유영선 현대이아이 대표는 “말레이시아로 가는 옷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용 셔츠 하나도, 서울 용산구의 한 H&M 매장에서 출발해 말레이시아에서 발견됐다. 이 헌 옷 역시 앞선 티셔츠처럼 경기도 이천의 물류센터로 이동했다가 말레이시아로 가서 클랑항 주변 창고로 옮겨졌다.

물론 헌 옷이 단순히 국외로 이동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자원 순환에 반드시 부정적이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의류가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했다는 점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매장 수거함 속 의류가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 수출업자 ㅈ씨는 “말레이시아에 간 것도 (분류 등 작업에 드는) 인건비가 저렴하니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매장 안의 수거함에는 넣을 때 다른 사람 보는 눈이 있으니 품질이 아주 낮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매립, 소각 등 문제로) 일단은 각자 나라에서 중고의류를 처리하는 게 맞는다. 결국 (패스트패션의 이런 행태는) 개발도상국에 (쓰레기를) 넘기는 개념이다. 이런 내용을 내세워서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옷을 매립하거나 소각할 경우 부족한 오염 방지 기술과 제도로 인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ㅈ씨의 말이다.

옷들이 국외로 가는 이유에 대해 문의하자 H&M 쪽은 “한국 매장 헌 옷 처리를 글로벌 모기업 본부 차원에서 진행한다. 본부가 계약을 맺은 재활용·분류 업체가 선별작업을 하기에 국외에 모인 것”이라고 답해왔다.

이 밖에 H&M, 자라, 유니클로 의류는 국내의 항구·물류창고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실험 대상 6개는 현재까지 추적 불능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동 중이거나 신호를 보내기 어려운 환경인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에서 케냐로 떠난 의류들. ⓒTEXTILE MOUNTAIN, Caitriona Rogerson

캐나다에서 케냐로 떠난 의류들. ⓒTEXTILE MOUNTAIN, Caitriona Rogerson


패션 기업 수거 정책, 책임 더욱 요구돼

패스트패션 기업의 수거함 속 헌 옷이 국외로 기부되는 경우에도, 이 과정을 ‘친환경’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한겨레21 취재팀이 자라의 매장 내 수거함에 넣은 옷 중에는 2벌이 항구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구로구의 자라 매장에 넣은 셔츠는 인천 중구로 이동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매장 수거통에 넣은 티셔츠는 부산 강서구의 항구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외로 이동하는 수순인 셈이다. 자라는 수거한 의류를 비영리 의류 기부 재단과 협업해 재사용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 재단이 국외로 옷을 기부하는 단체여서 기부를 위해 이런 경로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헌 옷이 제대로 재사용되는 일은 필요하다면서도, 패스트패션 기업이 단순히 이 정도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대량생산으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이 일부 옷을 수거해 기부한다고 해서 쉽게 버려지는 옷들의 문제가 사라지진 않기 때문이다.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는 “옷을 국외로 보내는데, 그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인 경우가 많다. 이런 기부들이 그 나라 섬유산업을 저해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는 한겨레21 취재팀이 “국외로 이동하는 옷의 처리 과정을 제대로 확인하는지”에 대해 묻자 “수거된 제품이 매립지로 보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협력업체와 합의한) 구체적인 조항, 수출이 금지된 국가 리스트가 있다”고 답했다. 인디텍스는 이어 “매립은 최대한 피해야 하며, 이 비율은 수거된 제품 전체 중량의 5%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패스트패션 기업이 중고의류 수거 정책을 시행한다면, 더 차별화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쓰레기 박사'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의류수거함에 버리지 말고 매장으로 가져오라고 했다면, 일반적인 헌 옷보다 더 책임 있게 유통하는, 개선된 방법을 보여줘야 한다. 매장에 수거함만 갖다 놓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의 헌 옷이 순환 정책에 기여한 바가 없다면 문제인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에 있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H&M(에이치앤엠) 매장 안에 설치된 의류수거함. 한겨레 조윤상 피디.

수도권에 있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H&M(에이치앤엠) 매장 안에 설치된 의류수거함. 한겨레 조윤상 피디.


“업사이클링 확대” 검증도 불가

패스트패션 기업은 ‘녹색’ 폐기물 수거 정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H&M은 수거된 옷과 원단의 약 8%만 에너지 회수 목적 위주로 폐기하겠다고 말한다. 68%가 재판매되고, 23%는 세척 천이나 단열재 등으로 바뀌고, 1.2%는 새 섬유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한다. 또한 자라는 “재사용 및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은 엄격한 폐기물 관리 과정에 따라 처리한다”고 말한다. H&M과 자라, 유니클로 모두 탄소배출의 감소와 재생원료 사용 증가 등의 대책도 내놨다. 정주연 대표는 “제시하는 내용이 투명하고 명확하지 않다. 온전히 믿기는 어렵다”며 “재활용 과정에서도 화학약품 처리 등 또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대안은 아니다. 의류를 재판매한다고 해도 판매업자가 이를 다 팔지 않고 버리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수거함이 있는 기업은 노력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황이 나은 편이다. 국내 패스트패션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의류 폐기물 수거함이 없다. 이를 포함해 자원 순환 정책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패스트패션 업체들에 한국의 중고의류 수출 문제와 자원 순환에 관해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스파오, 미쏘, 후아유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환경영향을 최소화하고 폐기되는 섬유와 소재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제품군을 확대하겠다. (…) 재고를 최대한 적게 보유해 재고를 소각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게 목표다.”(이랜드, 스파오·미쏘·후아유) “폐의류 재활용, 지속 가능한 소재 활용 및 친환경 상품을 통한 환경보호 인식 확대 등을 하고 있다.”(신성통상, 탑텐) “답변이 어렵다.”(삼성물산, 에잇세컨즈) 정주연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은 환경문제를 두고 아직 문제의식이 없기에 자원 순환에 대해 기업들이 관행대로 해오던 정책을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은 일부 기업들이 자원 순환 정책으로 제시하는 ‘재생섬유 개발’ 또한 현재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소각되고 매립됐을 때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연적인 물질로 생분해돼서 영향을 덜 미치는 소재를 생분해 소재라고 하는데 이 소재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일정 부분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거기에만 기대기에는 지금 기술 발전 속도와 생산 단가 문제 등 장애 요인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옷으로 인한 환경문제 해결에는 (패스트패션 기업이) 생산량 자체를 줄여야 하는 거죠.”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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