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사실은, 마지막 단추를 끼워낼 즈음에야 알아차리게 된다. 사고 또 산 옷들을 토해낸 옷장 앞에 서서 ‘옷을 뭐 입지’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뒤에야, 버려진 옷이 산처럼 쌓인 쓰레기 산에 올라 풀 대신 청바지 조각을 씹어 먹고 있는 소의 눈을 마주하고 난 뒤에야, 나는 그 많은 옷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손을 거쳐 나에게로 왔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화려하기만 한 패션의 이면에는 아동 노동력 착취, 인권 유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착취, 동물 살생 등이 따라붙고 있었다. 옷장 안에, 사람이 있었다.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8층짜리 라나플라자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최소 1138명이 죽고 2500여 명이 다쳤다. 망고, 프라이마크, 베네통, 월마트, 마탈란은 라나플라자 공장을 이용해 옷을 만들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르마니, 랄프로렌, 마이클코어스 같은 명품 브랜드도 값싼 방글라데시 공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전날, 건물 벽 안쪽에는 금이 가고 물이 새기 시작했다. 건물 바깥쪽에서도 이미 곳곳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2층에 입점해 있던 은행 직원들은 붕괴 위험을 알아차린 뒤 모두 철수했고, 경찰은 건물을 비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붕괴 당일 아침에도 공장 앞은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출근한 의류 봉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한눈에도 선명히 보이는 금을 바라보며 불안한 마음에 건물 안으로 선뜻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하지만 공장장들과 건물주는 너나 할 것 없이 노동자들을 향해 큰소리로 윽박질렀다. “대량 선적 물량 마감이 닥쳤다! 빨리 일해야 하니 들어가!”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건 협박뿐이었다. “당장 들어가 일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 건물주 소헬 라나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 장담하며 3천여 명의 노동자를 재봉틀 앞에 앉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건물은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하루에 옷 1천여 벌을 만들어내던 의류 봉제 노동자들은 그렇게 건물 안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하루 14시간 일하며 시급으로 260원을 받던, 20대인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건물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부실시공이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멘트보다 모래를 더 많이 사용했고, 콘크리트 건물에 필요한 철근 역시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계획은 5층이었지만 3개 층이 증축되며 8층으로 완공됐다. 부실시공된 8층 건물은 공업용 미싱의 육중한 무게, 미싱 작업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견딜 수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라나플라자 사건을 두고 “노예노동의 참사”라고 말했다. 다카무역노조 위원장은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라고 규탄했다. 아니다, 틀렸다. 라나플라자 사건의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바로 나다.
나는 저렴하지 않으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할인하고 또 할인해야 그제야 알았다는 듯 소비하는, 나는 그런 ‘합리적인 소비자’였다. 이런 소비자에게 꼭 맞춘 ‘싸고 예쁜 옷’을 만들던 노동자들이 무너진 건물에 갇혀 죽어가는 그날에도, 나는 분홍빛 블러셔를 양 볼에 잔뜩 얹은 채 서울 어딘가의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며 5천원, 1만원짜리 값싼 옷들을 건지는 데 정신이 팔렸을 것이다.
라나플라자 사건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 노동자였다. 패스트패션을 만드는 개발도상국 의류 노동자의 80%는 35살 미만의 여성이고, 이들은 주당 70~80시간 이상 일한다. 화장실에 가는 것은 물론 대화조차 금지당했다고 증언한 사례도 많다. 이 모든 탄압은 그저 제작비 감축이라는 명분 아래 버젓이 허용됐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 인터뷰에 따르면, 인도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의류 노동자들은 근무 중 계속되는 폭언을 견뎌야 했고, 화장실을 갈 시간은커녕 물을 마실 시간도 없이 장시간 일하면서 겨우 두 시간만 자야 했다.
더욱 최악인 것은 패스트패션 성수기, 그러니까 우리가 계절 신상품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어 하는 시기에는 옷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폭력과 괴롭힘이 평시보다 3.8배 더 많다는 것이다.<em> </em>한 달에 9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하기도 했고, 여성 노동자 절반이 60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에 대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아래 패션 산업에서는 싼 옷은 싸서, 비싼 옷은 비싸서 문제가 된다. 2018년 영국의 고급 브랜드 버버리는 약 422억원 상당의 재고를 모두 불태워 소각 처리했다. 5년간 소각된 제품의 추정 금액은 약 1328억원이다. 버버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카르티에, 몽블랑,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도 시장에서 팔지 못한 제품을 회수해 모조리 소각한 전적이 있다. 낮에는 공장을 돌려 새로운 디자인과 컬러로 된 제품을 생산하며 패션 매거진과 각종 화보 등을 기획하고, 밤에는 안 팔린 제품들을 소각장에서 불태우는 것. 이것이 이른바 명품 브랜드들의 오랜 관행이다.
‘있어 보이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엄두도 내지 못할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동원되는 것은 다름 아닌 살아 있는 식물, 그리고 동물이었다.
갓난아이의 생일 선물을 고를 때 고민 끝에 새하얀 ‘순면’ 옷을 골랐겠지만, 그 옷은 학교에 가지 못한 아홉 살짜리 아이의 손을 거쳐 재배된 목화일 수 있다.
‘순면’ ‘100% cotton’이라고 쓰여 있는 옷, 손수건 등의 부드러운 천은 목화 재배를 통해 만들어진다. 목화는 흔히 친환경 섬유로 여겨졌다. 식물에서 생산되기에 버려진 뒤에도 생분해가 용이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화에서 뽑아 만들었다고 반드시 자연적이라거나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em>.</em>
목화의 대량생산을 위해 등장한 구세주는 다름 아닌 농약과 살충제, 그리고 아이들이다. 전세계에서 쓰는 농약의 10%, 살충제의 25%가 목화 재배에 사용된다. 목화 농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은 결국 헬기를 이용한 농약 살포다. 농부들은 자신의 몸을 농약에 고스란히 노출하면서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 아웃도어 의류기업 파타고니아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대부분의 목화 재배지에서는 농약을 사용할 때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많은 농민이 글을 읽지 못해 제대로 된 안전수칙을 따를 수 없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해 장비를 구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약과 살충제 사용으로 ‘효율화’가 된 재배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수백만 명의 시민이 목화 농장으로 강제 동원된다. 그중에는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도 포함된다.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10대 면화 생산국이자 수출국 중 하나다. 하지만 2012년, 16살 미만 아동을 목화 농업에 동원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내세워야 했을 만큼 아동 노동 착취 문제가 심각했다. 국제사회의 감시 아래서도 2016년, 11살에서 15살 사이의 학생들이 면화 생산을 위해 단체로 동원됐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아동 노동력 착취, 열악한 작업 환경은 우즈베키스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면화 생산국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국가는 인도다. 인도에서는 지난 20년간 목화 재배와 관련된 농부 자살 사례가 20만 건 이상 보고됐다. 이 비극의 중심에는 세계 최대 농업생물공학 기업인 몬샌토가 있다. 1990년대 후반 몬샌토는 유전자 조작 목화인 비티(Bt)목화를 인도에 소개하며 “병충해에 강하고 살충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광고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Bt목화는 곧 해충의 내성을 키웠고, 농부들은 더 강력한 살충제를 사야 했다. 문제는 그 살충제 역시 몬샌토가 판매했다는 점이다. Bt목화는 씨앗을 재활용할 수 없고 매년 새 씨앗을 구매해야 하며, 이로 인해 농민들은 늘어나는 부채와 씨앗 및 농약 비용으로 큰 경제적 압박을 받았다. 빚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의 자살은 Bt목화 재배 지역에서 특히 더 많았고, 이로 인해 Bt목화는 ‘자살의 씨앗’이라고 불리게 됐다. 우리가 입는 새하얀 면 티셔츠와 순백의 양말 뒤에는 여전히 농부들의 희생과 환경 파괴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패딩점퍼 생산에 동원되는 오리는 생후 10주부터 평생 가슴 털을 뽑히다가 죽음을 맞는다. 털이 뜯기는 고통과 충격 때문에 제명을 다하기 전에 죽기도 한다. 모자 장식을 만드는 데 쓰이는 라쿤은 오리와 달리 ‘식용’ 동물이 아니라서 사육과 도축 과정에 제재가 약해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생을 보낸다. 그런데 이 동물들의 잔혹한 생애 끝에 탄생한 외투의 생애조차 일시적이다. 유행이 지난 패딩점퍼는 팔리지 않은 버버리 코트와 에르메스 가방처럼 소각장으로 향한다.
전세계 오리털과 거위털의 80%는 중국산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동물보호법’이 없다. 동물 학대를 방지하거나 농장 동물의 생산과 이동, 도축 과정에서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지난 몇 년간 북유럽에 모여 있던 모피농장이 대거 중국으로 이동했는데, 값싼 인건비와 함께 농장에서 지켜야 할 동물복지 규제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브플러킹(Live Plucking,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마취 등의 조치 없이 뽑아내는 행위)이 없다고 해도 이들 동물이 윤리적 환경에서 사육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온전히 자연적으로 털갈이하거나 도축을 통해 얻어낸 조류의 털만으로는 현재 다운 제품의 수요와 생산량을 충족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2022년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는 윤리적 다운 인증(RDS·동물 학대 없이 만든 제품 인증) 기준을 준수한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거위털 공급자들이 의류업체 몰래 라이브플러킹을 일삼고 있다는 증언을 공개해 업체 관계자들이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페타가 공개한 영상에는 털과 함께 피부가 뜯겨 나가면 마취나 진통제 없이 실과 바늘로 생살을 꿰매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파타고니아의 유기농 목화 플리스도, 프라이탁에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도 아니다. 지금 내 옷장에 있는 옷, 내가 가진 옷이 가장 친환경적이다.
새 옷을 사지 말자는 것은 멋을 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옷을 단순한 물건 이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친밀하고 직관적인 수단으로 여기고 존중하자는 말이다. 옷은 우리 일상에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주요한 자기표현이자 개성을 드러내는 매체다. 하지만 우리가 딛고 선 땅, 함께 사는 다양한 존재에 대한 배려와 이해 없이 제멋대로 생산되고 폐기되는 것이 진정한 ‘개성’일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일회용품처럼 싼 옷 대신, 보여주기만을 위한 명품 브랜드 대신, 우리에게 진정으로 어울리는 옷들을 지금 우리의 옷장에서부터 찾아보자.
이소연 작가·‘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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