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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가 사랑한 ‘남방큰돌고래’는 생태법인이 될 수 있을까

제주도, 2023년부터 생태법인 도입 절차 밟아와
등록 2024-09-14 08:20 수정 2024-09-14 14:06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헤엄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헤엄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주도 연안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국제보호종 남방큰돌고래에 법적 권리 주체 자격을 부여하는 생태법인 발의가 2024년 안에 추진된다.

제주도는 남방큰돌고래를 우리나라 1호 생태법인으로 지정하기 위해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2023년 3월부터 남방큰돌고래에 생태법인 자격을 주기 위해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을 운영해오는 등 제도 도입을 위한 절차를 밟아왔다.

 

아직 국내엔 자연물 생태법인 지정 사례 없어

 

생태법인은 기업에 법인격을 주는 것처럼 생태적 가치가 있는 동물이나 강, 호수 등 자연물에 법적 지위를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태법인 지정 사례가 없다. 외국에서는 인간에 의한 오염과 훼손 등에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 판례, 관습법 등을 통해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에서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했고, 2014년에는 아르헨티나 법원이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을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한 바 있다. 2017년 3월엔 뉴질랜드가 법 제정을 해 왕거누이강에 법인격을 주고, 원주민과 정부가 지명하는 대표 1명씩을 후견인으로 두도록 하는 등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주도는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면 서식지 보호와 개체 수 유지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체계적인 보존 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는 워킹그룹이 제시한 제주특별법에 법인격 부여 조항을 포함하는 안과 생태법인 창설 특례 조항을 포함하는 2가지 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인격 부여안’은 남방큰돌고래에 직접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고, ‘생태법인 창설안’은 도지사가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 특정 생물종이나 핵심 생태계를 지정해 이를 생태법인으로 창설하는 방안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들 두 가지 방안을 놓고 제주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과 실현이 가능한 방안을 찾아 정책 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의원실과 협의를 거쳐 연내 의원입법으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아직 확정한 안은 없다”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2024년 8월19일 주간 혁신성장회의에서 낚싯줄에 뒤엉킨 어린 남방큰돌고래의 긴급 구조 사례를 언급하며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제주특별법 개정안 관련 토론을 통해 생태법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연내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는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지정에 대한 국민 공감대 확산을 위해 9월2일부터 10월1일까지 제주도 누리집을 통해 생태법인 지정을 위한 서포터스 공개 모집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정책 제언이나 정보 교환, 홍보 도우미 역할 등을 하게 된다. 또 생태법인 지정을 위한 토론회와 설명회 등을 열어 국민적인 공감대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오 지사는 “국내 최초로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해 제주의 환경·생태적 가치를 지키고 국내 생태환경정책의 새로운 표준을 세우겠다”며 “이 제도의 도입은 법 제도의 변화뿐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인류 공통과제를 해결하고 인간 중심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으로 대전환하기 위한 혁신”이라고 말했다.

 

오영훈 지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으로 대전환”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19년 7월 남방큰돌고래를 적색목록상 ‘준위협종’(취약종의 전단계)으로 분류했다.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는 120여 마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돌고래 쇼에 동원됐던 돌고래가 방사되고, 2022년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제주=허호준 한겨레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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