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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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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동물을 위한 동물원’이 있다

청주동물원, 헤어진 부녀 사자 찾아 함께 지낼 수 있게
1호 거점 동물원으로 지정… 동물복지 동물원으로 우뚝
등록 2024-09-07 09:28 수정 2024-09-12 15:00
완연한 수사자의 모습을 회복한 청주동물원 바람이. 청주동물원 제공

완연한 수사자의 모습을 회복한 청주동물원 바람이. 청주동물원 제공


‘바람의 아들’ ‘바람의 손자’로 불리는 야구 가족 이종범·이정후 부자 못지않게 유명한 ‘바람 가족’이 청주동물원에 있다. 수사자 ‘바람이’(20)와 그의 딸 암사자 ‘디’(7)다. 디는 따로 부르는 이름이 없는데, 청주동물원이 딸을 뜻하는 영어 ‘도터’(Daughter)의 첫 글자를 따 별명으로 붙였다. 청주시는 디의 이름을 공모할 참이다.

바람이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라 ‘갈비 사자’로 불리다 2023년 7월6일 구조돼 청주동물원에서 생활한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 정도로 노쇠했지만 청주동물원에서 1년여 생활한 뒤 갈기, 눈매, 몸매 등이 살아 있는 완연한 사자 모습으로 회복했다.

바람이 사자 부녀 청주동물원에서 다시 만나

바람이의 딸 디는 2024년 8월20일 오후 아빠가 먼저 보금자리를 꾸민 청주동물원에 왔다. 아빠와 헤어진 지 411일 만이다.

디는 2017년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바람이와 암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람이가 2023년 청주동물원으로 온 이후 디는 대구의 한 동물원을 거쳐 강원 강릉 쌍둥이동물원에서 생활했다. 청주동물원은 “외롭게 지내는 디도 구해달라”는 시민·동물보호단체 등의 요청이 잇따르자 쌍둥이동물원을 설득한 데 이어 환경부의 양도·양수 허가를 받아 디를 데려왔다. 사자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관리 대상이어서 환경부 허가를 받아야 이사할 수 있다.

청주동물원으로 이사한 암사자 디가 아빠 바람이가 있는 쪽을 향해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다. 오윤주 기자

청주동물원으로 이사한 암사자 디가 아빠 바람이가 있는 쪽을 향해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다. 오윤주 기자


청주동물원으로 이사한 암사자 디가 아빠 바람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윤주 기자

청주동물원으로 이사한 암사자 디가 아빠 바람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윤주 기자


무진동 항온항습 차를 타고 270㎞를 달려온 디는 청주동물원 야생동물보호시설 격리방사장(495.8㎡)에서 생활한다. 아빠 바람이와는 10m 남짓 떨어져 있다. 바람이는 새 아내 격인 암사자 ‘도도’(13)와 함께 지낸다. 당장 만날 수 없지만 소리, 체취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바람이와 디를 모두 데려온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은 “디는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나 살아온 아이처럼 거리낌 없이 잘 지낸다”며 “사람에게 길든 강아지처럼 동물원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의 적응 속도가 빠르지만 바람이와 디의 상봉(합사)은 2025년 3월께 이뤄질 전망이다. 김 팀장은 “사실상 남남처럼 떨어져 지내왔기 때문에 관계 회복·설정 등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근친교배·자궁질환 등 예방을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하고, 개체대면·교차방사·체취적응 등 필요한 프로그램을 거쳐 점진적으로 합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람이와 디가 청주동물원에서 재회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주동물원이 야생동물 보호·보존·구조 동물복지 으뜸 동물원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엔 동물원 127곳이 있다. 이 가운데 100곳(78.7%)이 민간 동물원이다. 청주동물원을 포함해 서울어린이대공원·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대구달성공원 등 공공 동물원은 27곳이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랐던 바람이. 부산동물학대방지협회 제공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랐던 바람이. 부산동물학대방지협회 제공


청주동물원 수의사 등이 바람이를 훈련시키고 있다. 청주동물원 제공

청주동물원 수의사 등이 바람이를 훈련시키고 있다. 청주동물원 제공


야생동물 보호·구조에 최고의 동물원 꼽혀

이들 동물원 가운데 청주동물원은 동물복지 본보기 동물원으로 꼽힌다.

청주동물원은 2024년 5월10일 환경부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정한 거점 동물원이다. 거점 동물원은 동물원수족관법이 정한 시설·인력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청주동물원은 초음파·컴퓨터 단층촬영(CT) 등 첨단 장비를 갖춘 동물병원 시설에다, 인력·관리·운영 등이 국내 최고 수준이다. 환경부는 거점 동물원에 해마다 3억원 안팎을 지원하는데, 청주동물원은 동물원 역량 강화, 교육·홍보, 동물 질병·안전 관리, 종 보전·증식 등에 힘쓸 예정이다.

게다가 청주동물원은 야생동물보호시설, 천연기념물보존관 등도 운영한다. 이곳은 동물찻길사고(로드킬)·조류충돌사고 등으로 다친 천연기념물·야생동물 등을 치료한 뒤 재활 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동물 응급실이다. 또 치료한 수달 등 천연기념물의 야생 적응을 돕고 지원하는 자연 방사 훈련장(2천㎡)을 조성할 계획이다.

청주동물원 수의사 노트. 오윤주 기자

청주동물원 수의사 노트. 오윤주 기자


청주동물원은 우리에 갇힌 동물만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동물의 생태·이야기를 보여주는 동물원으로 거듭날 참이다. 청주동물원은 사자·호랑이 등 야생동물의 위·장 내시경 등 건강검진 공개를 시도한다. 야생동물 건강검진은 뉴질랜드 웰링턴동물원이 시행해 인기를 끌었는데, 국내에선 처음 시도한다. 이를 위해 2024년 11월까지 청주동물원에 야생동물보전센터(192㎡)를 조성하고, 초음파·컴퓨터 단층촬영(CT), 엑스레이, 내시경 장비 등을 확충한 뒤 임상 수의사 3명이 검진·진료·치료를 해나갈 계획이다. 청주동물원은 “사자·수달·호랑이·곰 등의 건강검진을 공개할 예정인데, 동물의 겉모습뿐 아니라 속 모습까지 살필 수 있어 교육 효과도 클 것”이라고 밝혔다.

청주동물원은 보유 동물 수를 줄여 ‘동물에게 좋은 동물원’이 되고 있다. 2019년 85종 516마리였던 보유 동물을 지금은 66종 290마리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보유 동물이 줄면서 동물들의 생활 공간이 넓어지고 활동폭이 커졌다. 특히 스라소니가 있었던 빈 사육장은 ‘사람관’으로 꾸몄다. 이곳 안내판엔 ‘좁은 공간을 더는 동물 사육에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유롭게 들어가 동물원 동물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에 갇힌 동물의 비애와 동물복지 중요성을 관람객 스스로 역지사지해보라는 뜻인데, 나름 인기다.

청주동물원 ‘사람관’. 오윤주 기자

청주동물원 ‘사람관’. 오윤주 기자


동물 수 절반으로 줄여 동물복지 실현

바람이와 디 등 바람 가족은 청주동물원 관람객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청주동물원은 바람이가 오기 전인 2023년 상반기 10만6650명이 찾았다. 하지만 바람이가 온 이후 2023년 하반기에만 16만7723명으로 57%가 늘었다. 2024년에는 9월1일까지 18만4642명이 찾아 관람객 30만 명대를 기대한다. 김정호 팀장은 “바람이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처럼 장애 있는 동물을 구해줘 고맙다’는 한 장애인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며 “동물원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학생·어린이 등이 부모의 손을 잡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바람이가 온 뒤 관람객 연령대가 남녀노소로 확장된데다, 동물만 보려는 게 아니라 동물복지와 생태·이야기에 주목하는 시민이 늘었다. 미래 주역 청소년 등이 찾아 자연·환경·생태적 가치를 느끼는 동물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한겨레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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