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23일 오전 충남 서천군 비인면 율리 산사태 피해 현장. 집 앞 논은 진흙밭으로 변했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근이며 단열재가 나뒹굴었다. 변기와 냉장고·싱크대·가스통과 세간살이들이 진흙밭에 어지럽게 박혀 있었다.
13일 전인 7월10일 새벽 3시께, 시간당 111.5㎜ 극한호우가 내렸다. 뒷산이 무너져 내렸다. 급류와 함께 흙과 바윗돌이 귀농한 전원주택 옆구리를 치고 들어왔다. 지붕이 기울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뒷산에서 나온 물이 쿨쿨 집 안으로 흘러들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거실 위 천장에 샹들리에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이 산사태로 2016년 귀농한 70대 부부 중 남편이 목숨을 잃었다.
집 뒤로 세차게 파인 골짜기로 벌건 흙과 기반암이 드러나 있었다. 가파른 골짜기를 130m가량 따라 올라갔다. 정상부에서 묘지가 나왔다. 여기가 시작이었다. 묘지 앞 다져놓은 땅바닥이 푹 꺼져 있었다. 자연이 할퀴고 간 자리를 추적하니 그 출발점에서 사람 흔적이 나타났다. “보시면 묘지 앞 노반(땅을 파고 잘 다져놓은 땅바닥)의 반 정도가 완전히 내려앉으면서 그대로 밀려 쏟아졌어요. 작년(2023년) 인명피해가 났던 경북 영주 갈산리 산사태도 뒷산 묘지 터가 터지면서 발생했어요. 묘지가 능선에 있더라도, 지형적으로 파여서 계곡 같은 곳에 있다면 일일이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요.” 동행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의 말이다.
그는 제도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현행 ‘산지이용에 관한 법률’(산지법) 등 법·제도는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아요. 산 중턱을 깎는 행위는 산지관리법에 의해 허가받아요. 행정도 책임이 있죠. 누구를 위한 산지 이용이냐는 거죠. 여기뿐 아니라 산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터질 수 있다는 전제로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생생한 교훈의 현장입니다.”
숲을 없애고 산에 인위적인 시설물을 세우는 건 그동안 ‘당연한 일’이었다. 국지성 호우 등이 일상화된 기후붕괴 시대, 상황은 달라졌다. 뼈아픈 참사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현장에서 재확인됐다.
이날 오후에는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산사태 현장을 찾았다. 역시 7월10일 폭우 때 벌어진 일이다. 산 밑 농막에 머물던 60대 주민이 흙·돌무더기에 깔려 숨졌다. 마구 구겨진 농막 옆으로, 고인이 정착하기 위해 짓던 집터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 잃은 집은 이미 바닥 골조공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곳 산사태의 최초 시작 지점은 산 주인이 벌목하고 목재를 운반하기 위해 낸 ‘임시작업로’였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산을 깎고 지그재그로 흙을 다져서 낸 폭 1.5m가량 길의 윗부분부터 흙무더기가 그대로 기반암에서 떨어져 농막을 덮친 것이다. 확인해보니 ‘임시’라 하지만 2010년 벌목이 이뤄진 뒤 14년째 방치돼 있었다. 작업로에는 물 빠짐을 위한 배수구 하나 없었다. 서재철 위원이 말했다. “이런 경사에 길을 낸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전혀 모르는 거죠. 촘촘하게 배수시설을 만들어도 버틸까 말까 한데…. 아무 대책도 없이 토사 위에 저런 길을 함부로 내면 안 됩니다.” 그는 빗물을 머금었다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이런 ‘무대책 작업로’가 드문 사례도 아니라고 했다. “구릉지 위 숱한 밤나무, 호두나무 밭(산)들이 다 저런 식이에요. 기계가 올라가게 하려고 작업로를 저런 식으로 해놓았어요. 비가 오면 어떻게 되겠어요? 똑같이 터질 수 있죠.”
이런 지적에 대해 벌채 허가를 내준 금산군청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담당자의 설명은 이렇다. “벌채하고 새로 심는 게 좋다는 것이 정부(산림청) 산림정책 기조예요. 그러니 군청에서 사고 방지 등에 대해 주의를 주지만 의무 규정도 아니고, (산 주인에게 벌채) 허가를 안 내주면 거꾸로 (소송을) 당합니다. 관련 법에 분명한 안전대책을 세우게 하고 벌채 전엔 주변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하게 하는 등 세세한 규정이 필요한데, 그런 게 없어요. 그에 반해 허가를 안 내주면 민법 위반 소지는 크고요. 저희도 참 안타깝죠.”
시간당 50㎜ 이상 국지성 호우가 3~4일 이상 이어진 이번 ‘7월 중순 폭우’로 산사태 인명피해가 발생한 서천 율리와 금산 지방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절토(흙 깎기) △성토(흙 쌓기) 그리고 △벌목 등 산사태를 촉발하는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절토는 토양이 연속적으로 받쳐주던 산의 경사면을 깎아내는 거죠. 쌓인 모래 옆을 손으로 긁어내면 위쪽이 쑥 내려오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절토는 토양과 바위 경계 부위의 물 흐름에 변화를 줍니다. 사면을 따라 계속 이어질 땐 문제가 없지만, 절토가 되는 순간 거센 수압에 의해 경계 부위 위로 흙이 떨어져 나오죠.”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설명이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수백 년 안정된 기존 토양 위에 흙을 얹는 게 성토인데, 얹어놓은 토양은 기존 토양과 분리돼 있어요. 경사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게 되죠. 여기에 벌목하게 되면 빗물을 막아주던 숲우듬지가 사라지니, 물이 바로 흙에 떨어지겠죠. 물을 조금씩 흘릴 때와 달리 바가지로 한꺼번에 퍼부으면 땅이 파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큰 나무가 사라지면 산이 물을 머금는 힘도 약해져요.”
이런 설명을 듣고 나서야 위험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곳 모두 사방팔방 뻗은 뿌리로 땅을 꼭 움켜쥐고 있어야 할 큰 나무가 드물었다. 어린나무들 위주였다. 2014년(율리), 2010년(지방리) 대규모 벌목이 이뤄진 탓이다. 그래도 산사태 길목에 아름드리 거목들이 보였다. 서천 율리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금산 지방리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산사태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지형을 존중하며 토양 미생물과 함께 서서히 오랫동안 자랐기 때문이다. 이런 큰 나무들이 더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11년 낸 ‘숲과 산사태’ 연구보고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경사지에서 숲을 제거하면 최대 20년 동안 (나무의) 뿌리 강도가 약화해 산사태 위험을 증가시킨다. 산사태 민감성(Susceptibility)은 뿌리가 성숙할 때까지 (벌목 후) 15년 동안 높게 유지된다.’ 우리나라 산림 곳곳은 수십 년간 막개발로 숲의 물 저장 능력이 떨어져 있다. 이번 참사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최병성 초록별 생명평화연구소장이 말했다. “숲은 녹색 댐 기능을 합니다. 숲이 좋아지면 낙엽 같은 부산물이 많아지고, 그러면 (땅속) 곤충 등 미생물이 많아지고, 숲의 물 저장 능력이 향상됩니다. 숲을 훼손하면 산이 물을 안정적으로 머금지 못하니 산사태 위험은 더 커지고 아래쪽은 홍수 위험이 커지죠.”
이날 산사태가 난 뒷산에서 이어진 아래쪽 하천들(서천 율리 성산천, 금산 지방리 장대울천)도 확인해봤다. 7월10일 폭우로 하천이 불어나 둑이 터졌고, 길이 끊어졌다. 13일이 지났지만 모래를 채운 포대로 둑을 간신히 받쳐놓았을 뿐 그날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장대울천에서 복구작업 중인 한 중장비 기사가 말했다. “다행히 사람은 안 죽었지만, 이렇게 둑이 무너진 곳이 금산군에만 몇백 곳이에요. 면마다, 골짜기마다 수두룩해요.”
흙을 깎고 쌓으며 나무를 베는 일은 묘지나 벌목 작업로 등 민간 공사에서만 이뤄질까. 임도 건설 등 산림청이 벌이는 산림 공공인프라 공사 역시 절토·성토·벌목이라는 성격은 같다. 전문가들은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2023년 1~7월 발생한 산사태 890건 가운데 316건이 산림청이 놓은 임도에서 최초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인명피해가 난 경우도 다수다.
홍석환 교수는 “지금까지 산림사업을 견뎌왔다고 하지만 강우 강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위적인 지형 조작과 완충 작용을 하는 수목의 제거는 이제 임계점을 훌쩍 넘은 상황으로 봐야 한다. 산림청 숲 가꾸기 사업도 수목의 30~40%를 제거하는 등 벌목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시간당 50㎜ 이상 집중호우가 내린 빈도는 1973~1982년 2.4회에서 2013~2022년 5.7배로 2배 이상 늘었다. 서용석 충북대 교수(지구환경과학)는 임도 산사태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임도를 지을 때 워낙 넓은 지역(2023년에만 918㎞ 공사)을 실적 내기 위주로 하다보니 공사비는 충분히 반영이 안 되고, 충분한 물성·역학성이 반영된 안정성 평가도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또 하나는 관련 규정도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성토 때 안식각을 고려해 40도보다 완만하게 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론 더 가파르게 쌓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게 무너져서 산사태가 나는 건데, 매번 ‘폭우다’ ‘자연재해다’ 탓만 하는 거죠. 또 대책은 늘 사방댐(산에 짓는 작은 댐) 건설이에요. 사방댐은 흘러내리는 걸 일부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거지 산사태를 막는 근본 대책은 아니잖아요.”
발생 지점이 임도 등 산림정책 결과물로 확인됐음에도 산사태 원인이 ‘산림관리 실패’로 결론 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다. 임도 배수로 3곳이 터져 산사태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한, ‘충남 논산 납골당 산사태’(2023년 7월14일) 원인도 ‘폭우’였다. 그리고 대책은 ‘시설물 보강 공사’(5억5천만원)였다. 정책 실패가 의심됐지만, 예산만 더 늘어난 셈이다.
국제학회 ‘공동산사태위원회’의 한국 대표를 지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가 말했다. “똑같이 비가 왔는데 왜 벌목한 데만 산사태가 날까요? 산사태의 80~90%가 사람이 건드려서 나는 인위적인 산사태, 인재예요. 벌목하고 산사태가 나면 사방댐을 짓는 산림청 행태는 병 주고 약 주겠다는 얘기죠. 원인 조사도 늘 산림청과 관련된 전문가들이 맡으니 결론은 늘 ‘자연재해’이고 오히려 예산만 더 따냅니다. 심지어 2002년 20명이 매몰됐던 경남 김해 농공산지 산사태는 같은 곳에서 6번 반복됐어요. 그래도 결론은 ‘천재지변’이죠. 일반 도로가 무너지면 공사한 사람이 책임지듯, 산림 공사도 마찬가지여야 해요. 공사할 때 ‘무너지면 책임진다’는 각서만 쓰게 해도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거예요.”
이에 대해 산림청은 <한겨레21>에 보낸 ‘서면답변’을 통해 “임도 안정성 강화를 위한 품질 제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변화하는 기후 여건을 고려해 산지 개발 시 재해위험 검토를 강화하겠다”며 “숲 가꾸기를 하면 숲의 산사태 저항력이 강화된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해명했다.
이날 오전 율리 산사태 사고 현장을 빠져나오니 750m 거리에 산사태 대피소(마을회관)가 있었다. 여기서 주민 박송자(83)씨를 만났다. “동이로 퍼붓는 듯한 이런 폭우는 난생처음이에요. 많이 놀랐죠. 그다음 날(7월11일)부터 비가 많이 오면 마을회관에서 꼭 자고 와요.”
서 위원이 말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대피소가 있어요. 여기만 오셔도 사셨던 거죠. 역량을 총동원해서 위험에 처한 주민들을 대피소로 안내할 대피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거죠. 대부분 연로한 분들인데 ‘위험하다’는 문자만 보내는 건 소용없죠. 기후위기 재난의 본질은 국가안보와 똑같아요. 2023년 산사태로만 23명이 사망하는 등 큰 인명피해가 있었지만 여전히 지자체들은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서천·금산(충남)=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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