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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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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텃밭을

등록 2024-07-20 14:15 수정 2024-07-25 17:55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여성 농민들이 보내주는 ‘언니네텃밭’ 제철 농산물 꾸러미를 몇 년째 구독 중이다. 이번에 받은 콩을 말리려고 종이 위에 펴놓았는데 이튿날 그중 몇 개에 싹이 났다. 장마철 습기 때문일까? 마른 종이 위에서 싹이 트니 신기했다. 먹어도 되나, 버려야 하나 고민하니 같이 사는 친구가 제안했다. “심어볼까? 이모작된다고 써주셨던데.” 맞다, 우리에게 밭이 있었지! 한시적으로 빌린 것이지만 지구의 어느 것이 안 그럴까.

우리에겐 4평 밭이 있다

자전거로 5분쯤 천변을 달리다가 잡목 사이 개구멍으로 들어가면 작물의 줄이 딱딱 맞는 밭들 옆에 빗다 만 머리칼처럼 엉킨 풀로 가득 찬 4평 밭이 있다. 4월부터 친구들과 함께 이랑 네 개를 만들고 스무 가지 넘는 채소를 심었다. 델피늄과 베르가모트, 수레국화에 딜과 애플민트 같은 허브도 심었다. 눈에 띄는 꽃들 때문인지 초보 농부의 엉거주춤한 몸짓 때문인지 밭에 등장한 젊은이들이 나름 화제였나보다. 멀리서부터 “아가씨들 밭에 함 가볼까~” 하고 행차를 알리며 다가오는 이웃 텃밭 어르신들이 조언하고 때로는 손도 보태주신다.

친구들이 텃밭 농사를 지어보자 했을 때 나는 시큰둥하니 바쁘다며 마다했다. 그러다 핑계 댈 일이 사라지고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게 친구들은 밭에 가보기를 권했다. 해가 중천에 있지 않을 때 물을 줘야 작물이 안 탄다는 걸 이제 배운 초보가 미루고 미루다 해가 지기 직전 겨우 길을 나선다. 나오는 게 귀찮아 죽겠는데 막상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흙 위의 일에 빠져든다. 몰입의 기쁨을 주는 진짜 휴식이다.

어릴 때 “크면 농사나 지어볼까~ 농사 멋진 듯” 하고 말하던 나를 엄마가 매섭게 나무란 적이 있다. 농사의 엄중함과 고단함을 몸소 알기 때문이었다. 농부를 사랑하는 정당을 자부하던 녹색당에서 농민 당원을 만나고 존경심을 가진 것과 별개로 농사는 낯설고 서툰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낭만화하는 동시에 귀찮아하는 내 진짜 마음은 뭘까? 밭에 가면서 이중적이었던 태도가 서서히 통합됨을 느낀다.

처음엔 벌레와 풀이 가득한 밭이 무섭기도 했는데, 충남 홍성의 풀풀농장 농부님들에게 들은 ‘자연농’ 이야기를 떠올리면 괜찮아진다. 농부님들은 기후위기 시대에는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농사지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그럴 때 “땅을 갈지 않고, 거름을 넣지 않고, 풀과 벌레를 적으로 보지 않는 농사”인 자연농이 힌트가 된다. 작은 땅에서 힘없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농사이기 때문이다.(자세한 이야기는 곧 출간될 나의 인터뷰집 <좋아하는 일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면>을 참고해주길.)

애호박 도둑 없으려면

애호박을 처음 따던 날이 떠오른다. 보물찾기 쪽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속속 자라는 조그만 애호박을 기다리며 레시피를 검색했다. 얼마 뒤 대규모(그래 봤자 대여섯 개) 수확을 위해 밭에 방문한 날, 애호박은 없고 거칠게 끊어진 줄기만이 남아 상황을 짐작게 했다. 텃밭을 시작한 이래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능성, 한순간에 무너진 신뢰! 이웃의 소행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들의 밭엔 우리보다 작물이 풍성했을뿐더러 작물을 소중히 하는 마음도 공유할 테니까. 밭캠(감시카메라)을 설치하거나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붙여야 하나. 그런다고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풍요롭던 마음이 허탈함으로 바뀐 채 무너진 넝쿨을 정리하던 중 애호박 도둑도 미처 못 본 대왕 애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내 팔뚝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큰 애호박으로 국도 끓이고 전도 부쳤다. 위장에 능한 고마운 애호박 덕분에 아픈 기억은 모두 잊고 다시 신나게 밭에 나간다. 애호박 도둑 없는 세상을 위해 모두에게 작은 텃밭과 텃밭에서 보낼 시간이 허락되길 바라며.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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