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문제가 ‘먹거리 걱정’으로 치환될 때, 국내 핵발전소와 그곳 사람들에게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후쿠시마처럼 사고가 나진 않았지만, 최근 많은 시민이 하는 우려를 지난 30~40년간 해온 이들이 있다. 그들이 싸우는 과정이자 결과물 중 하나가 ‘갑상샘암 공동소송’이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왜 이 위험한 곳에서 떠나지도 않은 채 싸움을 지속할까.
나는 핵발전소 최인접 마을 주민의 삶과 투쟁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2020년 10월부터 2021년 7월까지 경북 경주 월성 핵발전소 부근 마을에 머무르며 현장 연구를 했다. <원전 마을>(2022)이라는 책과 논문을 썼지만, 핵발전소에 대한 얘기는 언제나 어렵고 불편하다. 편하게 전기를 쓰는 우리의 삶과, 전기를 만들고 송전하는 과정에서 희생해야 하는 누군가의 삶이 연결됐음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주에는 총 6기의 핵발전소가 있고 그중 4기는 중수로형, 2기는 경수로형이다. 중수로형 핵발전소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중성자 감속재로 일반 물보다 무거운 중수를 쓰기 때문이다. 중수가 중성자와 반응하면 삼중수소가 만들어진다. 중수로에선 경수로보다 약 10배까지 더 많이 삼중수소가 생성된다. 삼중수소는 사고가 나지 않아도 액체와 기체 상태로 외부에 배출된다. 2021년 불거진 ‘월성 핵발전소 삼중수소의 비계획적 누출 사고’는 내부고발자에 의해 확인됐다. 내부고발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났을 수도 있다.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전까지, 월성 핵발전소 주변 주민 중 누구도 핵발전소를 의심하거나 비판하지 못했다. 언론, 학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모두 핵발전소를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주민에게는 낙후한 마을을 발전시켜줄 ‘굴뚝 없는 공장’이었다. 그러다 주민들은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처음 질문했다. “국내 핵발전소는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많은 기자와 전문가, 활동가가 찾아오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알게 된 진실은 ‘핵발전소의 안전 신화’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2~2013년 한수원의 원전 부품 비리 사건이 터졌다. 결국 월성 핵발전소 최인접 마을인 양남면 나아리 주민 72가구는 2014년 8월25일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곳에 핵발전소의 기초 굴착 공사를 시작한 1975년 이후 39년 만에 처음으로 한수원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주민조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아리 주민 중 5분의 1이 참여한 이주대책위는 그들의 말처럼 “안 해본 것 없고, 안 가본 것 없으며, 안 만나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했다. 그 중심에 ‘상여 시위’가 있었다. 자신들 직함을 관 위에 적고 핵발전소 돔을 상여 위에 실은 채 매주 월요일 오전 출근길에 치르는 장례식이다.
왜 하필, 상여 시위였을까? 처음 72가구의 100여 명으로 시작한 이주대책위 인원은 불과 2년이 지나지 않아 절반 아래로 줄었다. 가족이나 친척, 이웃이 한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위 시선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너희 엄마가 반대하고 아빠도 데모에 나온다며?”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자식이 혹시 직장에서 잘리거나 계약 연장을 못할까봐, 혹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한수원 직원들이 안 올까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이주대책위가 고민한 것이 바로 상여 시위였다.
“사는 게 죽는 것과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우리는 매일, 매 순간 나쁘고 위험한 방사능에 노출된 채 살고 있잖아.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려고 했지.”(황분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상여 시위는 ‘핵발전소 옆에서 사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그들의 울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나아가 자신들과 핵발전소의 장례식을 뜻했다. 황분희 이주대책위 부위원장은 “초반에는 상여곡 틀고 상여복까지 입고 했거든. 근데 너무 비참하더라.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이등국민이 된 것 같다 싶었어”라고 했다. 그저 ‘안전한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살고 싶다’는 당연하고 평범한 바람이 이들에게는 싸워서 쟁취해야만 하는 간절한 소망이자 울분이 됐다.
한수원은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마을 발전과 상생, 개발을 약속했다. 하지만 최인접 마을을 둘러본 누구라도 한수원의 약속이 얼마나 공허한지 쉽게 느낄 수 있다. 텅 빈 집들과 건물 여기저기에 붙은 ‘임대’ 표지는 ‘지나가는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이 지역을 비꼬는 말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편견인지 말해준다. 대책위 주민들은 “가장 힘들고 속상할 때는 다른 주민이나 경주 시민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할 때”라고 했다. “핵발전소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 “지금까지 보상금 받아 잘 살았으면서 왜 이주시켜달래”라는 말은 아직도 그들 가슴에 박혀 있다.
이곳 주민들도 이사를 원한다. 하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리 집을 내놓아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 실제 부동산 거래 현황이나 공시지가 상승률을 비교해보면, 핵발전소가 있는 양남면 15개 마을 중 핵발전소에서 가장 가까운 나아리의 부동산 거래 현황이 가장 적다. 공시지가 상승폭도 낮았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실제 받는 혜택은 한 달 약 1만3천원에 불과한 전기요금 할인뿐이다. ‘지원금’ 대부분은 마을사업에 쓰이거나 이곳 최인접 마을이 아닌 경주 시내 다른 지역의 개발과 발전에 사용된다. 그래서 주민들은 마을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 한다. 안전한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이들은 갑상샘암 등 건강 영향과 피해 외에, 재산권이나 거주 이전의 자유 같은 다양한 권리가 침해됐다.
핵발전소 이슈가 다른 환경오염 문제와 다른 점은 방사성물질이 보이지도,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핵발전소의 위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을 ‘근거 없는 괴담’으로 치부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나 미국 환경인문학자 롭 닉슨 같은 이들은 핵발전소와 기후변화 같은 현대사회의 문제를 ‘느린 폭력’이라 불렀다. 닉슨은 이를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폭력이자, 시간과 공간을 넘어 널리 확산하는 시간 지체적 파괴이며,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폭력”으로 정의했다. 느린 폭력의 개념은 핵발전소 위험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기초를 마련해줬다. 자신들의 비판을 괴담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비가시적 위험’에 이름을 붙여 가시화하는 것이었다.
2015년 한국방송(KBS) 탐사보도 프로그램 <추적 60분>에서 주민들의 소변검사를 의뢰했다. 나아리(핵발전소 반경 1㎞)와 하서리(5㎞), 경주 시내(30㎞ 이상)에서 각각 20년 이상 거주한 주민 5명의 소변 속 삼중수소와 식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가까이 사는 주민일수록 소변에서 더 많은 양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식수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후 관련 연구가 계속돼 주민들은 자신들의 싸움을 뒷받침해줄 강력한 무기이자 근거를 얻게 됐다. 그러나 논쟁이 ‘삼중수소 유무’가 아닌 ‘위험성 정도’와 ‘기준치’로 옮아갔다. “멸치 몇 그램, 바나나 몇 개 먹는 것과 유사할 정도로 큰 문제가 없다”는 쪽과 “삼중수소가 신체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붕괴가 더욱 위험하다”는 쪽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누구도 핵발전소의 안전이나 위험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민들은 갑상샘암 공동소송으로 나아갔다.
이주대책위에는 현재 주민 10여 명이 남아 있다. 모두 30~40년간 월성 핵발전소 주변에서 살아왔다. 한수원의 직간접적 협박과 압박에도 활동을 이어간다. 누구도 자신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이름을 붙인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과 가족의 소변 속 삼중수소라는 실체로 이 위험을 가시화했다. 국가나 한수원이 해야 할 일을 직접 했다. 그런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막대한 보상이나 지원금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박하고 당연한 일상이다.
경남 밀양의 송전탑 갈등에서 제시된 구호처럼 ‘전기는 누군가의 눈물을 타고 흐르며, 우리 모두는 전기 공동체 속에서 연결된 존재’이다. 월성 핵발전소 최인접 지역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은 이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속 그들에게, 내부 속 외부에 전가해온 피해와 희생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김우창 <원전 마을> 저자·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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