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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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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아닌 꿈

등록 2022-11-30 07:33 수정 2022-12-09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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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은 툭하면 교실에서 쫓겨나곤 했다. ‘그날’이 되면 선생님은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자리에서 일으켜세웠다. 수업료를 제때 내지 않은, 아니 내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간혹 돈을 가져오라며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어떤 날엔 동급생 절반이 쫓겨났다. 집에 가도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소년의 엄마가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겨우 수업료를 냈다. 1960년대,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절이다. 초중고 무상교육 실시 이전이었고,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것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소년은 이른바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다행히 그즈음 집안 형편도 폈다. 성인이 된 소년은 대학 졸업 뒤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했다.

그런 아버지를 둔 덕분에 나의 10대는 ‘3루’쯤부터 출발했던 것 같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안 입고 안 먹을지언정 교육과 관련해선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지 회사의 학자금 지원 제도 덕분에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녔다. 주변엔 등록금을 버느라 ‘퐁당퐁당’ 휴학을 반복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며 졸업했다.

대학 간판이란 세습된 학력자본이자 지위다. 그 간판을 따기 위한 대가가 평생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6년 전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낸 젊은 연구자를 인터뷰했다. 그는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공부하느라 모두 5천여만원의 등록금을 냈는데, 절반 가까이 학자금대출로 마련했다. 그는 학생 채무자인 자신의 삶에서 출발해 ‘대학생과 빚’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여기에 살을 붙여 책으로 펴냈다. 책에는 흥미로운 제안이 나온다. 학생을 채무자로 만드는 사회에서 벗어나려면,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를 지금처럼 개인이나 가족에게 맡길 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학자금 부채 탕감, 무상 대학 교육, 기본소득과 같은 꿈을 꾸자고 했다.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나 가능할 법한 꿈이 이제는 현실이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8월 학자금대출을 1인당 최대 2만달러(약 2700만원)까지 탕감해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1600만 명이 구제 승인을 받았다. 막대한 정부 예산이 필요할지라도 계층·젠더·인종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학자금 부채가 심각한 생애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해서다. 한국에서도 꿈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다. 노동·사회단체로 꾸려진 ‘학자금부채탕감운동본부’(운동본부)가 10월 출범했다. 손고운 기자가 두 달간 학자금대출을 받았던 청년들의 삶을 운동본부와 함께 살펴봤다.

마지막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탠다. 이태원 참사 ‘시민참여형(오픈형) 지도’를 만들었다(18~19쪽). 그날의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그날 이태원을 방문했던 13만여 시민이 가진 ‘조각’을 하나하나 모아보려 한다. 먼저 <한겨레21>이 취재를 통해 만난 시민과 상인 8명이 제공한 사진과 영상 등을 일부 공개해 지도 위에 표시했다. 참사 직후 모습이 아니라 왜 이러한 참사가 발생했는지 밝히기 위해 참사 직전 상황을 주로 재구성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정보무늬(QR코드)로 특별 웹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함께 그날의 조각을 맞춰나갈 시민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린다(전자우편 han21@hani.co.kr, 문자메시지·카카오톡 010-7510-2154).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1440호 표지이야기

돈 없으면 공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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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빚에 저당잡힌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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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탕감’보다는 ‘무상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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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빚 탕감, 민주-공화 충돌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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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등록금 없는 대학, 영국은 ‘등록금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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