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채 탕감’보다는 ‘무상 교육’

이정우 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인터뷰
등록 2022-11-28 19:25 수정 2022-12-09 10:15
김진수 선임기자

김진수 선임기자

“미국에서 추진하는 학자금 부채 탕감 정책은 ‘투자’로 보는 게 맞죠.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예요.”

2022년 10월27일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우 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2018~2021년)의 말이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인당 최대 1만달러(약 1330만원) 학자금대출을 탕감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뭔가 대책 강구가 필요한 문제였다”고 말했다. “미국 학자금대출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몇 년 전에도 미국 학자금대출 연체율이 14%였어요. 우리나라는 2%대(2021년 기준)니까 훨씬 심하죠.”

이정우 전 이사장은 ‘소득분배론’을 연구한 경제학자(경북대 명예교수)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저소득층 학생 지원에 집중했다. 한국장학재단은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고등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설립 취지에 맞춰 국가장학금·학자금대출·생활비대출 등 다양한 사업을 운용한다.

경제적 여건에서 비롯한 교육 불평등, 이로 인한 빈부격차 악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경북대 교수일 때 불과 5점 차이로 성적장학금을 못 받게 된 저소득층의 뛰어난 학생을 위해 학교와 싸우기도 했다. “교육경제학에서 ‘장학금’을 누구에게 줘야 하느냐, 그런 연구가 있어요. 메리트베이스트(Merit-based·성적장학금)가 맞느냐 니드베이스트(Need-based·저소득층장학금)가 맞느냐. 장학금은 니드베이스트가 맞아요. 실제로 미국 장학금은 가난한 학생 위주로 줍니다. 성적은 별로 안 봐요.”

2009년 설립된 한국장학재단의 역할이 커지면서, 서민·중산층 대학생 약 100만 명이 평균 등록금 절반 이상을 국가장학금으로 지원받는 수준까지 왔다. 그래서 이 전 이사장은 당장 ‘학자금 부채 탕감’을 주장하는 것은 조심스러워했다. “탕감해주면 (대출을) 성실히 갚아온 사람은 억울할 수 있잖아요. 기본소득 같은 방식으로 ‘청소년 모두에게 얼마씩 주겠다.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은 빚 갚는 데 쓰라’고 하면 억울한 사람 없이 할 수 있겠죠.”

이 전 이사장은 한국도 “학비가 비싼 영미형(고등교육 모델)을 탈출해 무상 고등교육을 지향하는 유럽 쪽으로 가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유럽 쪽은 대학 등록금 부담이 없죠. 그런데 우리는 영미형이에요. 유럽형으로 가려면 예산이 많이 필요한데 우리 국민은 조세저항이 너무 심해요. 여야 할 것 없이 세금 깎아준다고 하고, 그럼 국민은 당장은 좋아하죠. (무상교육이나 증세가 안 되는 건) 정치인들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