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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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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생 빚 최대 2만달러 탕감… 공화당 반대에도 추진

바이든 정부 ‘행정명령’에 보수세력 ‘위헌 소송’ 딴지… 연방대법원 결정이 관건
등록 2022-11-30 06:16 수정 2022-12-09 01:13
2022년 8월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대학생들이 ‘학자금 부채 탕감’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2년 8월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대학생들이 ‘학자금 부채 탕감’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은 지금 학자금대출 탕감 논쟁으로 시끄럽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학자금대출 탕감 정책에 공화당이 소송전으로 맞대응하면서 부채 탕감이 잠정 중단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

2022년 11월14일(현지시각) 바이든 정부는 10월부터 받아오던 학자금대출 탕감 접수를 중단했다. 앞서 보수 성향인 6개 주(네브래스카·미주리·아칸소·아이오와·캔자스·사우스캐롤라이나)가 “입법 사항인 학자금대출 탕감을 행정명령으로 시행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날 항소법원이 받아들여 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나흘 뒤인 11월18일 법무부는 연방대법원에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우리는 학자금 채무 구제 프로그램에 대한 법적 권한을 확신하고 있다. 이미 1600만 명이 구제 승인을 받았다. 법원에서 승소하면 구제를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버니 샌더스 주장을 채택한 바이든

앞서 8월24일 바이든 대통령은 학자금대출을 1인당 최대 2만달러(약 2700만원)까지 탕감해주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연소득이 12만5천달러(약 1억6600만원), 부부합산 25만달러(약 3억3200만원) 미만인 채무자가 대상이다. 비영리단체 ‘책임 있는 연방 예산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탕감 조처로 4400억~6천억달러의 정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경쟁자들은 학자금대출 탕감에 적극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1인당 5만달러(약 6600만원)까지 학자금 부채를 탕감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부채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코로나19 충격을 극복하는 경기부양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버니 샌더스 의원은 대규모 수익을 얻는 금융회사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국민 전체 학자금대출을 탕감하겠다고 했다. 당시 샌더스 의원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은 세대의 모든 학생 부채를 탕감하고 대학 교육을 받은 ‘죄’로 평생 빚을 갚아야 하는 부조리를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대부분의 가정에 대해 공립대학의 수업료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낸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선 과정에서 두 사람의 공약을 수용해 1인당 1만달러까지 학자금 부채를 탕감하는 공약을 채택했다. 하지만 취임 뒤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대규모 정부지출 프로젝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Bill) 법안에 학자금대출 탕감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학자금대출 상환 유예를 여러 차례 연장했다.

2022년 들어 물가가 치솟고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민주당에서는 중간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젊은 세대의 표심을 공략하고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학자금대출 탕감 정책을 발표했다.

학자금 빚 총액 2257조원, 1인 평균 5300만원

일부 경제학자는 학자금대출 탕감이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비합리적인 과도한 조처이고, 현재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자금대출을 탕감받으면서 남은 대출금 상환을 시작하기 때문에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2022년 8월31일 낸 ‘미국 학자금대출 탕감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 및 평가’ 보고서에서 “상환유예 종료로 인해 부채 탕감의 영향을 상쇄하면서 소비지출, 물가, 성장 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 중론”이라고 분석했다.

11월 치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애초 예상을 깨고 상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학자금대출 탕감 정책이 젊은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2022년 4월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여론조사 결과 30살 미만 성인 응답자의 87%는 ‘정부가 학자금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부분적 또는 완전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출 부담도 인종·소득계층 편차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의 학자금 부채 총액은 1조7천억달러(약 2257조원)로 국내총생산의 6.5%에 해당한다. 1인당 평균 부채액은 4만달러(약 5300만원)로 추정된다. 전체 학자금대출 채무자 4500만 명 가운데 탕감 대상자는 약 4300만 명에 이른다. 학자금대출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수십 년간 대학 등록금이 빠르게 오르는 동안 소득은 정체됐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시엔비시>(CNBC)는 “1991~1992년과 2021~2022년 사이 평균 대학 등록금은 두 배 올랐다. 하지만 임금은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증가하는 대학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점점 연방과 민간 지원(학자금대출)에 의지했다”고 분석했다.

학자금대출 부담은 인종, 성별, 소득계층 등 집단별로도 편차가 두드러진다. 대학 등록금 분석기관 ‘에듀케이션데이터’에 따르면 흑인 대졸자가 백인 대졸자보다 평균 2만5천달러(약 3300만원) 많은 학자금 부채를 지고 있다. 2년제 대학 학위 소지자 가운데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학자금대출을 받을 가능성은 49.9% 높다. 바이든 정부의 학자금대출 탕감은 중산층에 큰 혜택이 돌아간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의 예산모델 분석 결과를 보면, 수혜 예상자의 소득수준을 5단계로 나눴을 때, 가운데인 3분위 계층의 비중이 30.9%로 가장 높았다. 3분위보다 소득이 높은 4분위(상위 20~40%) 비중은 23.2%였고, 3분위 바로 아래인 2분위(하위 20~40%) 비중은 22.9%로 엇비슷했다.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하위 20%)의 비중은 13.3%,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상위 20%) 비중은 9.8%였다.

백악관은 학자금대출 탕감이 “노동자와 중산층 미국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라고 강조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책 발표 당시 “대출을 갚았거나 대출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한 조치 아니냐”는 지적에 “백만장자들만 면세를 받는 것은 공정하냐”고 반문했다. 학자금대출 탕감을 반대하는 보수층이나 공화당의 초고소득자 면세·감세 정책을 비판하는 취지다.

김태근 미국 아델파이대학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2022년 6월 <국제사회보장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대학 자율화가 확고한 미국에서 서민-중산층의 주요한 고등교육 통로였던 공립대학마저 주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등록금이 크게 올랐다”며 “고비용의 대학교육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누적된 부채를 일부 탕감한다 해도 학자금대출 문제는 앞으로 계속 불거질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 초반 주창했던 2년제 대학 무상교육 같은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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