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6호 표지이미지
23살 황유미. 2007년 3월6일,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 이름은 기자로서 나에게 각별하다. 2003년 10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유미씨는 2005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회사를 휴직한 뒤 골수 이식수술을 받는 등 치료받았지만, 2년을 견디지 못했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아버지 황상기씨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강원도 속초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딸이 일했던 작업장 환경을 의심했다. 유미씨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불산 등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가 빼는 세척 작업을 했다. 앞서 유미씨와 함께 ‘2인1조’로 일한 동료 역시 백혈병 진단을 받고 두 달 만에 숨졌다. 화학물질이 백혈병의 원인일 가능성이 컸다.
이 사건을 취재하며 처음 산업재해(업무상 재해)에 눈뜨게 됐다. 2007년 6월, 황상기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며 유족급여를 신청했고 삼성전자 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체가 꾸려졌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반올림’에는 반도체 공정에서 일했던 노동자와 가족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더딘, 지난한, 오랜 싸움이 계속됐다. 나 역시 그 뒤로도 오랫동안, 더디게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 사안을 계속 취재했다. 과학적 확실성,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 등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또렷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산재와 관련된 기사를 쓸 때면,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유미씨 흑백사진이 떠오르곤 했다. 그 뒤 2014년에야 유미씨 죽음이 산재라는 사실이 판결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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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이선호. 2021년 4월22일,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그는 300㎏ 컨테이너 날개(철판)에 깔려 숨졌다. 나는 그해 5월, 세종시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 차려진 천막 분향소에서 아들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무릎 꿇고 꺼이꺼이 울던 아버지 이재훈씨를 보았다. 슬픔은 슬픔이, 아픔은 아픔이 알아본다고 그의 등을 두드려주던 김미숙씨도 산재로 아들을 잃었다. 24살 김용균. 2018년 12월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그의 이름은 산재로 숨진 ‘청년노동자’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23살 박아무개. 2022년 10월15일 오전 6시15분, 에스피씨(SPC)그룹의 계열사에서 빵을 만들던 청년 여성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김용균처럼 원래는 2인1조로 했어야 하는 일을 혼자 하다가 소스를 배합하는 혼합기(교반기)에 몸이 끼여서 숨졌다. 작업 규정상 있어야 할 덮개는 없었다. 평소에도 그는 최소 15~20㎏ 무게의 재료가 담긴 통을 들어 혼합기에 붓거나 회전날개가 돌아가는 기계 안에 직접 손을 넣어 재료를 섞는 일을 했다. 12시간 주야 맞교대하는 고강도 노동이지만, 안전교육도 매뉴얼도 없었다. 이 죽음은 구조적 원인에 의한, 명백한 산재다. 그런데도 회사 쪽은 그가 숨진 다음날, 바로 옆에서 동료들을 다시 일하게 했다. 심지어 고인의 장례식장에 답례품으로 제공하라며 ‘빵’을 보냈다. 이러한 반노동, 반여성, 반공정 기업이 만든 ‘피 묻은 빵’을 사지 않겠다며 SPC그룹 제품 불매운동이 불붙고 있다. 신다은, 박다해, 박기용 기자가 이 죽음의 구조적 문제점을 취재했다.
앞으로도 <한겨레21>은 그 이름들을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겠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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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죽음을 빚고 있었다
15kg을 수시로 들며 일했던 여성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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